과목 명시해 자율성 되레 뒷걸음질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강화다. 학생의 창의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 기존의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통합하고 시간도 늘렸다. 재량활동이 본래 취지와 달리 교과 보충학습으로 변질되는 등 형식적ㆍ획일적으로 운영됐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일선 교육현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창의'는 말뿐이고, 오히려 어린 학생들의 학습부담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교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실시하도록 돼 있다. 환경, 에너지, 보건, 경제, 교통안전, 정보화, 다문화, 양성평등 교육 등 필요한 프로그램을 학교 실정에 맞게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한 2009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초등학교 교육과정 편성ㆍ운영의 중점' 항목에 '정보통신 활용 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 등은 관련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서울 A초등학교의 박모 교사는 "이전까지는 과학의 날이 되면 관련 교육을 하고, 특별활동 시간에는 학생회 선거도 하는 등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재량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이름만 바뀌고 정보통신, 보건, 한자 교육을 하라고 하니 자율성이 사라지는 모순이 생겼다"고 말했다. 교과부에서는 강제사항이 아니라고 하지만 학교 평가 등에서 프로그램 내용들이 반영되기 때문에 학교에선 창의적 체험활동이란 명목으로 정보통신, 보건, 한자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교사는 "결국 한글도 못 익힌 초등학교 1학년이 어려운 한자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학생들에겐 교과목 하나가 추가된 셈"이라고 말했다.
창의적 체험활동의 영역을 자율, 봉사, 진로, 동아리 활동 등 4개로 나눈 것도 초등학교 실정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진로, 동아리, 봉사 활동은 중고교생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활동 내용들은 입학사정관 전형에 반영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구분을 초등학생에게까지 적용하다 보니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하다며 경쟁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활동 내용으로 올리거나 동아리 활동과 관련해 청소년 단체에 무더기로 가입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교사운동의 홍인기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창의적 체험활동과 관련해 이러저러한 것을 하라고 하면 학교에서는 별다른 교육철학적 고민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역량 개발보다는 결과물 위주의 체험활동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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