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관 고려한 투명강화유리에 까치 등 하루 수십마리 충돌
25일 낮 대구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 금호강변도로. 금호2교 쪽에서 팔공로로 이어지는 우회전 도로가에 까치 비둘기 등 산새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도로 바닥에도 깃털과 핏자국 등 차량이 죽은 새를 깔고 지나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진행방향 오른쪽에 높이 7m까지 솟은 방음벽 중 투명 방음벽에는 새가 부딪친 자욱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날 취재진이 눈으로 확인한, 온전한 새 사체만 7마리나 된다.
도시미관을 위해 설치한 방음벽이 새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여명에 먹이를 찾아 나섰던 산새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중 투명 유리를 허공으로 착각하고 부딪쳐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매일 이 도로를 이용한다는 김모(42ㆍ여ㆍ대구 동구 공산동)씨는 "지난해 말 방음벽 설치공사를 시작하면서 죽은 새가 가끔 보였는데, 지난달부터는 많은 날에는 하루 20∼30마리나 된다"며 "소음을 차단하고 보기 좋게 한 방음벽이 어떻게 새들의 무덤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형체가 온전한 죽은 새를 전문가에게 의뢰해 사인을 알아본 결과 대부분 대부분 뇌진탕이나 목 골절로 나타나 로드킬도 아닌 방음벽이 주범임이 분명했다.
이 방음벽은 포스코건설이 지난해 말부터 13억원을 들여 금호강변 도로에 길이 800m, 높이 4∼7m로 3월말 완공했다. 미관을 고려해 격자형태의 창틀 모양에 흡음소재와 함께 투명강화유리를 장착했다.
문제는 이곳이 새들의 이동로인데다 방음벽이 너무 깨끗해 유리가 있는 줄 모르고 날아가다 부딪친다는 점이다.
까치 비둘기는 물론 곤줄박이 딱새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경북대 조류생태환경연구소 박희천소장은 "주변 야산과 금호강, 죽은 새가 떨어져 있는 위치로 보아 방음벽이 새들의 이동로를 가로막은 것으로 보인다"며 "새들은 주로 해뜨기 1시간 전부터 일출 2시간까지 강에 내려와 물을 마시거나 벌레를 잡아먹는데, 방음벽 북쪽 야산에 서식하던 새가 금호강변으로 내려와 먹이활동을 하고 단산지 방향으로 이동하다 변을 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시간대는 기온이 낮아 벌레들의 움직임이 느려 새들의 먹이활동이 왕성하다고 덧붙였다.
방음벽 높이 7m에다 5m 가량 도로 높이를 더하면 도로변 나무보다 높아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새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곳에 설치된 투명강화유리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아크릴 소재보다 훨씬 더 맑아 새들이 유리창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투명방음벽이 예상치 못하게 새들의 무덤이 되자 이시아폴리스측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거의 매일 아침 인부들을 동원해 죽은 새 사체를 수거하지만 역부족이다.
이시아폴리스 개발계획팀 정해진 과장은 "일반 방음벽은 차량 운전자들이 답답해 하고, 특히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예상돼 더 많은 비용을 들여 투명 강화유리를 설치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당혹스럽다"며 "전문가 자문을 받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강석기자 kimksu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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