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선수가 되지 말아라.”
황규훈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건국대 감독)이 후배들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올해로 지도자 생활 30년째. 그의 손길을 거쳐간 마라토너만도 100여명, 중장거리 부문까지 합하면 300여명에 달할 정도다. 장기식, 김이용, 오성근, 형재영, 유영훈 등에서 최근 떠오르는 정진혁, 김민, 백승호까지 이름만 대면 한국 육상의 계보가 그려질 정도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100여일 앞두고 마라톤 총괄담당 역할을 맡은 그를 23일 종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김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1,500m와 5,000m에서 한국기록을 수 차례 경신했지만 마라톤에선 한 번도 1등을 한 적이 없었다”는 그는 “능력만 믿고 훈련을 게을리 한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35km까지는 선두를 달렸지만 마지막 5km를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배가 고파 훈련량을 소화하지 않은 게 패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라톤의 ‘마’자에 눈을 뜰 무렵인 30세에 은퇴를 선언했다는 그는 그러나 지도자로선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는“마라토너로서 실패가 오히려 약이 된 것 같다”며 “패배자로서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늘 나처럼 운동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와 함께 “마라톤을 비롯한 장거리 종목은 불성실하면 도전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눈을 팔거나, 한 발만 삐긋 해도 기록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한다”며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황 부회장이 육상에 입문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군산상고 1학년 때 교내 단축마라톤에서 학교 대표선수를 누르고 1위로 골인하자 육상명문 서울 배문고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 이후 건국대, 한국전력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당시 뛰고 싶어도 배가 너무 고팠다는 그는 “김치 깍두기만 먹고 좋은 기록이 나올 수 없다. 지도자의 제1덕목은 선수들을 잘 먹이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수 천 만원의 자비를 들여 선수들의 식단을 개선한 그의 뚝심은 육상계에 널리 회자된다.
황 부회장이 선수 선발 때 가장 눈길을 주는 부분은 폼. 그는 “안정된 폼은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고교때 기록이 너무 좋으면 오히려 선수생명이 조로(早老)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이어 세계기록에 4분여 뒤진 한국마라톤을 끌어올리려면 대학 1,2학년때는 스피드훈련에 집중하고 풀코스는 3학년때 도전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세계선수권이 자칫‘남의 잔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비장의 카드로 마라톤 단체전을 준비 중” 이라며 “시상대에 태극기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천= 글ㆍ사진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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