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토종 에이스들의 부진에 많은 야구팬들이 마음을 졸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사도 셀 수 없이 쏟아졌죠. 저는 카메라에 클로즈업 된 그들의 얼굴에서 평소 같지 않은 묘한 긴장감과 흔들리는 눈빛을 봤습니다.
그들의 심정을 저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KBS N의 메인 프로그램인 ‘아이러브베이스볼’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레 ‘에이스(?)’ 임무를 맡게 됐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김석류 선배님보다 더 잘 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 저는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잘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큰 실수를 낳았고, 계속 쫓기듯 일하게 됐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 우연히 한화 류현진 선수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투수는 힘든 순간을 어떻게 극복할까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류현진 선수는 “안 좋은 것은 절대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조금은 허탈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류현진 선수의 말의 ‘참뜻’을 깨닫게 됐습니다. 안 좋은 생각은 빨리 지워버리고, 그저 현재의 것에만 충실한다면 어느덧 자연스럽게 모든 것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1년간 저는 늘 위기의 순간마다 류현진 선수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내곤 했지요.
최근 류현진 선수와 윤석민 선수가 드디어 첫 승을 따냈습니다. 오랜만에 마운드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저도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김광현 선수는 얼마 전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날, 김성근 감독님의 지도하에 불펜에서 무려 221개의 공을 던졌다지요. 김광현 선수의 첫 승도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에이스들은 항상 부담감을 등에 지고 마운드에 오릅니다. 그들은 공 하나 하나를 던질 때마다 외로운 사투를 벌이겠지요. 가끔 그들이 흔들려도 그들을 믿습니다. 안 좋았던 것은 빨리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에이스’들의 힘을 알고 있으니까요.
KBS N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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