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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세월은 흘러가고 목소리는 높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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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세월은 흘러가고 목소리는 높아지고

입력
2011.04.25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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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스무 사흗날은 내게 슬픈 날, 젊은 아버지의 제삿날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懸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를 내 손으로 적었다. 할아버지는 평생의 내 일을 엄하게 가르쳤다. 그 할아버지의 제삿날도 같은 날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들이 데리러 올 것이다’고 예언했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다 모인 아버지 파제삿날 아침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태어난 날은 달라도 돌아간 날은 같은 날이 되었다. 나는 젊어서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갔다고 믿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할아버지가 죽음의 고통까지 참으면서 그 날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믿는다. 스무 사흗날, 같은 날 나는 두 장의 지방(紙榜)을 적었다. 그러다 고모님들과 상의해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할머니 제사까지 같은 날로 모시면서 세 장의 지방을 적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할머니의 제삿날을 염려해 내린 가족의 결정이지만, 산 사람이 편하기 위해서 내린 불효라는 것을 안다. 아침부터 부산, 양산, 진해고모들이 찾아와 어머니와 함께 제수를 마련한다. 처음엔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이 세월이 흘러갈수록 목소리가 높아진다. 누가 들으면 싸운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노인이 된 어머니며 고모들은 귀가 어두워졌다는 말이다. 세월은 무심한데 오늘 또 스무 사흗날이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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