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기사 양반, 지금 투표장 안가고 어디 가십니까! 나쁜 사람들 몰아내려면 투표를 하러 가야죠~ 이 나라의 주인이라면 누구나 투표를 해야 합니다. 저기 투표소 앞에서 빨리 내려주세요!"
26일 오후 8시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택시 택시'.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잠자코 객석을 지키던 은발의 노신사가 난데없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호통을 치기 시작한다. 출연 배우마저 저만치 떠밀어 내고 어느새 택시 기사 옆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나섰다. 관객 모두가 어리둥절해했지만 실은 공연의 일부분이었다.
관객에서 무대 위의 배우로 변신한 주인공은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15일 배우로 첫 신고식을 치른 후 벌써 4번째 출연이다. 강단을 지켜야 할 교수님이 연극 무대에 오른 것은 과거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맺었던 연극 연출자인 김상수씨와의 정치적 인연 때문. 김씨의 초대로 이달 초 연극을 보러 갔던 김 교수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연극이라는 점에 마음이 이끌려 단번에 출연을 결심했다.
김 교수는 연극을 '시민연극'이라고 규정했다. 많은 시민들이 연극을 보고 소외된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저부터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직 노동자들이 근무 기간 중 백혈병에 걸리고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연극을 통해 처음 알았거든요. 대한민국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많은 시민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연 제의에 선뜻 응했죠."
4ㆍ27 재보궐 선거를 하루 앞둔 이날 특별히 '투표 독려'대본을 따로 만들었다는 김 교수의 전문분야는 역시나 경제. 김 교수는 뉴타운에 대해 할말이 많아 보였다. "뉴타운이라고요? 망타운이죠. 망타운. 주민들에게 돈 많이 번다고 속여서 도장 찍게 만들고, 돈 못 내면 쫓겨나고 패가망신하게 만드는 걸요. 문제는 망타운이 부동산 버블을 이끌고 결국에는 대한민국 경제도 망친다는 데 심각성이 있죠" 김 교수는 지난 3번의 무대에서는 자신의 소신을 담은 "뉴타운 = 망타운"이라는 대본으로 관객 앞에 섰다.
3분여의 짧은 출연. 카메오라는 호칭이 더 적절해 보이지만 김 교수는 주연배우들보다 더 열심이다. 직접 대본을 구성하는 것은 물론 공연 두 시간 전부터 대기실에서 상대배우와 호흡을 맞춰본다. 김 교수는 "사실상 내가 적은 대본이라 살짝 실수하더라도 아무도 틀렸는지 모른다"며 "연기는 고사하고 내 말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김 교수는 "정치인들 뿐 아니라 지식인들도 소통에 나서야 한다"며 "연극 무대든 트위터 든 시민들에게 올바른 경제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9일 마지막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5월 1일까지.
글ㆍ사진=강윤주 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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