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서 주택공사를 진행하다가 내전 때문에 임시 철수한 중견 건설업체 A사는 최근 자금난 우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발주처에서 270억여원 공사비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 재개나 피해보상 여부조차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공사 장비 파손과 현장 훼손 등 전체 피해는 2,000억원 규모"라며 "당장 기댈 곳은 정부 지원뿐인데 당국은 지난달 초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만 한 뒤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전복'이나 '시위 진압' 등 사태가 마무리기는커녕 카다피 세력과 반군 세력이 국토를 양분하는 등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카다피 정권 시절 리비아 주택건설 시장에 진출했던 국내 중견업체의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
24일 국토해양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리비아에서 사업을 진행중인 국내 업체는 20곳(하청업체 포함 72개사)이며 이들 기업의 공사 미수금은 3,300억원. 현장에 두고 나온 자재 분실과 현장 훼손 등을 포함하면 전체 피해 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한다. 한국 건설업체가 리비아에서 진행 중인 사업의 총 규모가 105억달러(11조4,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10%를 날린 셈이다.
실제로 A사와 함께 리비아 동부에서 주택사업을 진행하던 중견 B사는 미수금 258억원에 간접비까지 포함해 총 800억원의 피해를 입었으며, 500억원대의 피해를 입은 C사도 자금난이 우려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사태 이전에도 주택사업은 플랜트나 토목공사 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번번이 대금 지급이 연기됐는데, 리비아 사태로 현장에서 철수하고 리비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융제재가 이어지면서 대부분 업체가 자금난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 업체는 최근 만기 채권을 갚지 못해 위기에 빠졌으나, 금융권에서 400억원을 지원받아 부도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리비아 사태가 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 당초 업계는 카다피나 반군 세력이 신속하게 우위를 차지하면 수 개월 내에 주택공사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내전 양상으로 접어들면서 공사의 무기한 연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공사가 재개된다고 해도 미수금 정산과 파괴된 현장 수습 및 공사인력 모집에 상당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사 미수금은 대부분 날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관련 기업들은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구체적 방안을 아직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사태 초기 정부가 ▦대출만기 연장 ▦신규여신 확대 ▦보증확대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으나,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는 상태. A건설 관계자는 "신용보증기금이 기준을 완화해 리비아 피해 기업이 필요한 유동성만큼 특별보증을 해준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로 가뜩이나 건설업계에 대한 금융권의 시각이 냉랭한 상황에서 업체당 수백억원씩이 들어갈 추가 대출 지원에 선뜻 나설 금융기관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국내 PF 사업으로 대출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쉽지 않은 대목"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