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개인적으로 선물(先物) 투자를 했다가 1,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금 출처와 투자배경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24일 금융당국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인을 통해 1,000억원대의 투자를 했다가 투자 금액 대부분을 사실상 회수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도 지난해 말 SK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관련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뒤 이미 사실 관계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1,000억원은 어디서?
투자 손실과 관련, 가장 큰 궁금증은 자금의 출처다. 금융ㆍ사정당국은 원론적 입장에서 회사 공금이나 비자금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SK그룹측은 "최 회장 개인 돈"이라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은 2009년 2월 처분한 SK홀딩스 보유지분(2.17%ㆍ103만주) 매각대금(920억원)과 배당금 등으로 1,000억원을 마련했으며, 형제들과 일부 부회장 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여파로 최 회장은 거액의 현금이 없었다'는 일부 추정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 회장은 SK C&C(지분 44.50%)로부터 최근 5년간 329억원을 배당 받았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이 지분 중 8%를 담보로 우리투자증권에서 1,500억원 안팎의 자금을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왜 선물 투자에 손댔나
선물 거래란 주식이나 원자재, 외환 등등 각종 기초자산을 미래 일정한 시기에 특정 가격으로 매매키로 약속하는 파생 거래다. 거래대금 일부만 증거금으로 제시하므로 큰 돌을 벌 수도 있고, 크게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따라서 1,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선물에 투자했다는 것은 최 회장이 그만큼 빨리 큰 수익을 낼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에서는 SK그룹의 지배구조를 확실히 하기 위한 차원에서 최 회장이 유동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이후 SK그룹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최 회장이 지분 44.5%를 보유한 SK C&C가 지주사인 SK홀딩스의 지분 25.1%를 '옥상옥' 형태로 보유하는 한편, 일부 지분의 맞교환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결하기는 했으나 SK증권 처리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SK C&C 이외 SK그룹 계열사들은 7월2일까지 SK증권 보유 지분(30%)을 처분해야 하는데, 최 회장은 SK증권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 C&C가 SK증권 지분을 사들이면 SK C&C를 통해 SK홀딩스를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가 깨지게 되므로, 최 회장이 SK증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개인 자격으로 30%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데 약 2,000억원 가량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최근 SK그룹 내에 사촌 간 '계열 분리'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과 사촌 관계인 최신원 SKC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형제는 최근 SK가스, SK증권, SK네트웍스 지분을 늘려가고 있는데 SK케미칼은 공정거래법상 SK그룹이 SK증권을 매각할 경우 인수가 가능한 주체이기도 하다.
한편 SK관계자는 "그룹 경영과는 무관하게 총수가 법적으로 문제없는 개인 자금으로 투자했다가 벌어진 일"이라며 일부에서 일고 있는 부정적 여론의 확산 가능성을 경계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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