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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역사가 화해할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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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역사가 화해할 수 있으려면

입력
2011.04.2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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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9를 생각하면 이 문장이 먼저 떠오른다.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작가 최인훈이 1960년 11월 발표한 장편소설 의 서문 맨 끝에 쓴 문장이다. 나에게 4ㆍ19는 최인훈의 표현에 의하면 ‘저 빛나는 4월’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1960년 11월이면 4ㆍ19가 일어난 지 약 7개월, 5ㆍ16이 일어나기 약 6개월 전이던 때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세대로서 4ㆍ19가 가져다 주었던 한국사회의 모습을 을 쓴 작가가 ‘사는 보람’을 느낀다던, 군사쿠데타로 종언을 고하기 전의 그 ‘새 공화국’의 이미지로 상상하는 것이다.

그 시절이 도대체 그 이전과는 어떻게 달라졌길래, 이 회의적인 작가가 ‘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을까. 이 문장의 바로 앞부분에 답이 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이 위에 인용한 문장의 말줄임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4ㆍ19가 일어난 지 올해로 만 51년이 됐다. 51주년이던 지난 19일 해프닝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인 이인수씨와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가 서울 수유리 국립4ㆍ19민주묘지를 참배하고 4ㆍ19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사죄 성명을 발표하려다 4ㆍ19 관련 단체 및 희생자 유족들의 저지로 무산된 일이다.

최인훈의 표현에 따르면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 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4ㆍ19 일주일 뒤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라는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 5년 후 사망했다. 그의 하야성명에는 ‘국민이 원하면’이라는 정치적 수사만 있었을 뿐 사죄의 뜻은 없었다. 이인수 씨는 유족의 자격으로 그 후 51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4ㆍ19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못했던 사죄를 이번에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51년 동안 뭘 하고 이제 와서 사죄하겠다는 것인지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4ㆍ19 당일 묘지에서 이인수씨 일행을 막아선 이들은 “제사 지내려는데 고인을 죽인 사람이 찾아온 것 같다. 정신적 테러를 당한 기분”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얼마 전부터 우리사회 일각에서 이 전 대통령을 이른바 ‘건국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와 함께 그의 동상과 기념관을 건립하려는 쪽의 움직임이 있고, 거기 강하게 반발하며 이번 사죄 방침을 그런 움직임에 따른 “정치적인 쇼”라고 비판하는 쪽, 양측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가 화해하는 데는 51년의 세월도 부족했던 것일까. 여전히 우리사회의 어른세대로 있는 4ㆍ19세대 내부에서도 반응이 엇갈리고, 그건 뒷세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죄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그 숨은 의도에 의문을 표하고, 이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부터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함께 나온다. 51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놓고 독재와 민주, 반공과 반대한민국, 나아가 한국현대사 전체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4ㆍ19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혁명이다. 최인훈은 51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을 무려 여덟 번이나 고쳐 썼고, 서문만 여섯 번을 새로 썼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의 문제의식이 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계속 현재적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는 지난해 4ㆍ19 50주년을 맞아 한국일보가 연재한 기획시리즈 ‘4ㆍ19 50년을 말한다’ 대담에서 ‘4ㆍ19는 미완의 혁명’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4ㆍ19는 정권교체 같은 통상적 의미의 정치적 부침을 넘어, 문명의 주기가 바뀌었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긴 한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4ㆍ19로 문명의 주기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역사의 화해를 계속 모색해야 하는 도중에 있다.

하종오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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