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무리에도 꼭 두 유형이 있다. 누군가 정성껏 선을 긋는다면 누구는 헤집고 다니며 그 선을 지운다. 휴지로 눈물을 닦는 아이가 있다면 그 휴지로 코를 푸는 아이가 있다. 거칠게 말하면 시(詩)에 대한 태도에서도 이 극단이 평행선을 그어왔다. 시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고자 하는 구도적 시인과 그 세계를 해체하고 모독하려는 위반적 시인. 한쪽이 시로서 경건한 정화를 추구한다면 반대편은 불결한 오물이 되고자 한다. 시의 사제(司祭)로 치면 베드로와 유다의 관계쯤 될까.
최근 산문집과 시집을 각각 낸 천양희(69) 시인과 김언희(58) 시인. 등단 이래 수십 년간 독자적 시 세계를 오롯이 밀고 온 두 여성이 공교롭게 이 대척점에서 마주 선 시인이다. 새로 낸 책에서도 이들의 상반된 시 세계를 여지없이 확인할 수 있다.
고난과의 싸움에서 우러나는 희망
1965년 등단 후 7권의 시집을 내며 한평생을 시와 삶을 한 묶음으로 살아 온 천 시인의 산문집 <내일을 사는 마음에게> (열림원 발행)는 자신의 오랜 문학적 이력과 시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풀어낸 책. 솔직 담백한 언어로 씌었으되 오랜 사색이 응축된 문장은 그의 시처럼 팽팽한 시위 같다. 내일을>
그에겐 시란 삶의 고통과 대결하는 긴장 속에서 나오는 구도의 산물이다. "시란 갈등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의 고리를 잡는 것 이상의 것이다. 진주조개가 이물질을 점액낭 속에 넣고 고통스럽게 진주를 만들듯, 시도 그렇게 쓰여야 한다" ('시가 고프다' 중).
그 모진 싸움에서 나온 열매인 시가 또한 배반의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가 "시처럼 지독한 형벌이 없다"면서도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대표 시 '직소포에 들다'는 그가 괴로웠던 시절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여행에서 깨달은 체험을 13년에 걸쳐 완성한 시. 그 체험과 시 쓰기로 정말 다시 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에게 시는 '정신의 밥'이며 '운명'이다.
이런 도저한 구도적 시 세계엔 시를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에게 시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며"나를 찢고 나온 분신"이다. 좋은 시는 그래서 좋은 삶이란 희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삶이 아무리 우리를 배신할지라도. 산문집은 바로 기만의 생을 딛는 힘으로서 희망을 잃지 말 것을 그의 힘겹지만 절박했던 체험을 통해 묵직하게 전한다.
욕망에 대한 조롱과 폭로
1989년 등단 후 <트렁크> 등 세 권의 시집을 낸 김 시인은 정반대로 '불쾌하고 추잡하고 메스껍고 직설적인' 시 세계를 펼쳐 왔던 시인. 문학평론가 남진우씨에 따르면 '메두사'다. 추잡한 성(性)과 오물이 거침없이 등장하는 그의 시들이 존재의 불쾌한 진실과 대면토록 한다는 것이다. 트렁크>
6년 만에 나온 새 시집 <요즘 우울하십니까?> (문학동네 발행) 역시 그 연장선이다. '연어'를 보며 시인이 떠올리는 것은 귀향이 아니라 생식의 잡스러움이다. "하루 이만 개의 알을 싸지른다 연어/되돌아가 이만 개의 알을 삼켜버린다 연어/하루 이만 번씩 진저리를 친다 연어/이제 아무하고도 안 한다 연어/金이고 朴이고 하고 보면 죄다 근친이다 연어/뒷구멍으로 죄다 피가 섞였다 연어"('연어' 중). 시집엔 인용하기 힘들 만큼 외설적인 단어들이 넘실대는데 판타지로서의 성이 아니라 늘어진 뱃가죽 같이 구깃구깃한 육체 그대로의 모습이다. 요즘>
그에게 시는 곧 인간 욕망의 추문을 폭로하는 장. 아무리 닦고 닦아도 비워 낼 수 없는 괴물적 본성을 직시하려는 것이다. 희망은 현실의 추악을 위장하는 기만이며 애당초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에 따르면 기껏해야 우리는 덜 위선적인 세계로만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그가 '시가 내게 코를 푼다'고 하거나 '변기에 앉아서는 시를 읽읍시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어설픈 위로는 없다
천 시인의 시가 삶의 고통스러운 결핍을 주목한다면 김 시인의 시는 감당하기 힘든 욕망의 잉여에 초점을 맞춘 측면이 강하다. 이렇듯 상반된 두 시인이지만 닮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시인의 시엔 흔히 여성 시인을 아우르는 상투적 모성애와 어설픈 위로가 없다. 천 시인이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고난과의 긴장감 높은 대결 뒤의 얘기다. 그는"그 고통과 내가 한 몸이 되어 버렸다고 느꼈을 때에야 그 고통이 거름이 되어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김 시인은 "마술사는 너를 무대 위의 허공에 둥둥 떠 있게 하고는 그냥 가 버렸다"고 딱 자른다. 고통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달콤한 시 따위는 없는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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