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모두들 이 정권과 재계의 밀월관계가 임기 내내 각별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친기업 정책을 표방했다.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규제완화 드라이브가 그 단적인 예다. 재계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언제라도 저에게 직접 전화해도 좋다"며 친근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정부는 취임 첫해 세제개편에서부터 '부자감세'비판을 받으면서도 소득ㆍ법인세 인하를 골자로 한 감세정책을 내놓았다. '재계의 저승사자' 공정거래위원회마저 경제력 집중 억제보다는 사후 규율을 강화하는 쪽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폐지하기로 했던 임시투자세액공제는 번번이 재계 반대에 부딪혀 명맥을 유지했다. 정권의 전반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변화가 감지된 것은 임기 반환점이었던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에서는 승자가 독식하지 않는다"며 공정사회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공정사회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기업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이용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적었다. 성장의 과실을 적절히 환원하자는 정도로 해석됐다.
그러나 공정사회란 말은 생각보다 더 날카로운 칼날을 품고 있었다. 구제역과 물가고 등 악재가 겹쳐 체감경기가 냉각된 지난해 말 이후 긴장관계가 조성됐다. 이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하자 범정부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돼, 장관들이 돌아가며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이익공유제를 주장하면서 외곽에서 때리기에 나섰다.
이후 정부는 재벌의 아킬레스건을 넘보기 시작했다. 국세청은 경영권 편법승계 경로로 지목된 비상장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는 계열사들이 오너일가(주로 2세) 소유 비상장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한편으론 배당으로 다른 한편으론 상장차익으로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선사'하는 관행을 손보겠다는 것. 한 재계관계자는 "이는 재벌의 가장 예민한 부분인 경영권 승계를 건드린 것으로 정부가 정색하고 과세하기 시작하면 배겨 날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우연인지는 몰라도 삼성그룹 주요계열사에는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SK그룹 최태원회장의 선물투자손실 문제도 불거졌다. 앞서 한화 태광 등 몇몇 곳은 검찰수사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강펀치를 날렸다. 부의 대물림만큼이나 예민한 이슈, 지배구조 문제를 들고나온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애초 대기업 프렌들리는 아니지 않았느냐"고 말했지만, 재계는 그 차원을 넘어 '대기업 언프렌들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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