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으로 입대해 군복무중인 다문화가정 출신 혼혈인이 100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다. 한국사회가 다문화시대에 들어섰음을 나타내는 여러 징후가 있지만,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만 19세가 돼 징병검사를 받고 입대한 것만큼 상징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동남아 출신 이주여성들이 들어와 한국 남성들과 결혼하기 시작한지 20년이나 됐고, 그들이 낳은 자녀가 유사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분명 한국 사회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자로서 군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병역 의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있다.
그 동안 결혼 이주여성을 포함해 귀화 외국인과 그들의 자녀를 포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주로 한글을 비롯, 한국음식 만들기, 큰절하기 등 한국 문화를 가르쳐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공기업 사장을 비롯해 책임 있는 자리에 귀화 외국인을 기용하거나, 군에서 장교 임관선서와 병사 입대선서에서 '민족'이란 단어를 '국민'으로 바꾼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다문화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이들의 출신 배경이 되는 여러 문화에 대한 존중 없이 무조건 한국식으로 바꾸려는 동화주의가 깔려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의 다문화정책도 그렇고, 지역의 다문화센터나 결혼 이주여성의 시부모 등 주변 사람들도 한국 문화를 배우기 만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베트남,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등 이들의 출신국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각이 영미권이나 중국, 일본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인의 해외관광지로 단연 인기를 누리고 있고, 이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류 바람이 일어난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정작 이 국가들의 문화나 사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서울시내 중심가의 외국어학원들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학원뿐이고, 동남아 언어를 가르치는 학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필리핀에 살다 최근 들어온 한 지인이 전해준 이야기다. 아이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도 줄 겸해서 현지인 가정부를 두었는데, 아이가 영어보다 타갈로그어를 더 잘하자 집안 어른들께서 역정을 내더란 것이었다. 자기 집뿐만 아니라 보통의 한국인 가정이라면 어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화의 정수랄 수 있는 책이 수입되는 것을 봐도 미국 일본 등 강대국 것이 대부분이고, 동남아로부터 수입되는 것은 손꼽을 정도다. 학계에서도 동남아에 대한 연구는 찬밥 신세고 관심 밖이다.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편향적인데다 동북아시대니 하면서 아시아에서도 동남아 국가는 얕잡아본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있다. 동남아의 미래 전망은 접어두더라도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날이 멀지 않았다. 몇 해 전 슈퍼볼 MVP 하인즈 워드가 한국을 방문해 한복을 입고 한국인 어머니를 칭송한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우리의 다문화가정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이주여성들과 귀화 외국인들의 출신 국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다.
남경욱 문화부 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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