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현리 청솔당에 귀뚜라미 형상을 한 나무우체통이 서있다. ‘젊은 시인’ 정명기 선생의 작품이다.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 선생은 나이 들어 시를 쓰기 시작해 ‘젊은 시인’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현역에서 은퇴해 나무를 만지는 일은 선생의 오랜 일이다. 귀뚜라미 우는, 청솔당이라는 이름을 듣자 선생이 특별히 만들어 주었다. 주인이 없어도 우편물을 잘 받아주던 이 귀뚜라미 우체통에 요즘 사건이 생겼다. 우편물을 꺼내기 위해 열쇠를 열면 검불들이 쌓여있었다. 누가 장난을 쳤구나 생각했는데 그 일이 계속되자, 그때서야 새가 집을 지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닿았다. 정확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가 내 우체통을 빌려 쓰려는 것인지, 내 우편물이 새들의 새 집짓기를 방해하는지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얻은 답이 우체통을 잠그지 않고 활짝 열어 놓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새에게 내 우체통을 내 줄 뜻이 있다. 우편물은 우체통 옆 낡은 나무의자에 앉혀놓고 가면 된다. 그런데 그 뜻을 새들에게 전달할 방법을 알지 못해 안타깝다. 정명기 선생에게 말씀 드려 아예 새집을 달아놓아야 할 것 같다. ‘젊은 시인’은 환한 웃음으로 멋진 새집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자연, 사람이 그들에게서 빌려 쓴다는 것에 선생도 흔쾌히 동의해 주실 것이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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