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비밀결혼을 했고, 아무도 모르게 이혼을 했다. 급기야 재산분할 송사까지 벌이고 있다. 정작 해명해야 할 당사자는 종적을 감췄다. 연예인에겐 한 가지만으로도 비난을 피하기 힘든 악재다. 그런데 네 가지가 한꺼번에 터졌다. 연예인 생명에 치명적인 상황이다. 당연히 "대중을 기만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문화 대통령이라고 견뎌낼 수 있겠냐"는 예상이 나왔다.
뒤늦게 밝혀진 가수 서태지(39)와 배우 이지아(33)의 비밀 결혼과 이혼, 소송의 파장이 거세다. 가는 곳마다 이 일이 화제가 되고 한때나마 사회적 이슈들을 압도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유례없는 파문을 낳은 것은 '문화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며 거대한 팬덤을 형성해온 서태지 특유의 신비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인기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적당히 감추고픈 바람과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는 대중의 욕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마련이다. 반면 서태지는 확연히 달랐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모든 걸 감추고 잠깐 활동하다 사라지는 등 철저히 신비주의를 고수한 예는 서태지가 유일하며 슈퍼스타덤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의 경우 신비주의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보다 더 강한 카리스마를 구축하는 바탕이 됐다.
이번 일로 그 견고한 성(城)이 무너졌다. 그의 팬인 강상연(38)씨는 "한때 대중문화 담론을 좌지우지했던 신화적 인물이 세속으로 내려온 느낌"이라고 했다. 이제 신비주의의 갑옷을 벗어야 한다는 질타도 나온다. 심재웅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과도한 신비주의가 네티즌을 광분하게 만들었다. 서태지가 어떻게든 빨리 대중을 이해시킬만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서태지가 그동안 여러 인터뷰에서 "결혼할 뜻이 없다"고 말해온 것은 신비주의를 넘어 대중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인 만큼 용서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 보면, 공익을 해친 것도 아니고 그저 사생활을 감췄을 뿐인데 비난의 화살을 마구 퍼붓는 것은 지나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은퇴한 뒤 결혼했는데 굳이 밝혔어야 하나 싶고, 컴백하고는 밝힐 시기를 놓쳤을 수 있다"며 "도의적 문제는 있더라도 범법 행위도 아닌데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심재웅 교수도 "네티즌 반응이 집단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악의적 댓글을 다는 식으로 흐른다면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진 쪽으로 이슈가 확대돼 인터넷 사용수준을 다운그레이드 시키는 결과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논란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서태지 팬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 분위기다. 21일 결혼-이혼 보도가 나온 직후 팬들도 패닉 상태에 빠졌다. 요태지닷컴 등 팬클럽 사이트는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의 글들로 뒤덮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서 "별일 아니다"고 서로를 위로하고 차분하게 사태를 지켜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상상(32ㆍ가명)씨는 "서태지 팬덤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돼 이번 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믿지 않고 싶다는 반응도 있다. 해외 체류 중인 서태지가 이번 일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지인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 알려지면서 그가 팬들에게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할 것이란 기대도 드러냈다. 이수열(37ㆍ가명)씨는 "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밝혔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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