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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軍 인사 흔드는 투서사건, 왜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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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軍 인사 흔드는 투서사건, 왜 반복되나

입력
2011.04.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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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면 끝… 진급에 목숨 걸고 '경쟁자 흠집내기'

군이 뒤숭숭하다. 장군 진급자인 상관의 횡령의혹을 고발한 헌병 중령의 투서(投書) 때문이다. 횡령과 진급로비에 현역 대장 두 명의 이름까지 거론되면서 이례적으로 국방부 조사본부와 감사관실, 군 검찰 등 군의 수사기관이 총동원됐다. 상부구조 개편 등 군이 부르짖고 있는 개혁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도 부족한 판국에 난데없이 투서에 발목이 잡혀 허둥대는 모습이다.

진급에 불만, 투서의 유혹

규율과 기강이 엄격한 군 조직이지만 역설적으로 투서사건은 빈번하다. 4월과 10월 정기인사를 전후로 투서는 극성을 부린다. 2004년 11월 국방부 독신자 숙소 부근에서 장군 진급자 52명 중 16명의 문제를 조목조목 적시한 A4용지 2장의 투서가 발견돼 그 해 장군인사를 번복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국방부, 각군본부는 물론 국민권익위원회, 국회 의원회관에도 인사를 앞두고 수십 통의 투서가 날아든다고 한다.

투서는 익명으로 문제를 고발하고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이다. 예전에는 대필 투서도 흔했지만 요즘은 거의 대부분 컴퓨터로 작성한 문서 형태다. 편지봉투에 찍힌 소인도 국방부가 있는 서울 용산 근처인 경우는 거의 없다. 보는 눈이 많아 자칫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4년 파문 이후 관사 등 군인 거주지역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한 뒤로는 직접 전단형태의 투서를 뿌리는 방식은 자취를 감췄다.

군에서 가장 큰 불만은 진급이다. 진급에서 탈락하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는다는 우려가 크다. "군인의 진정한 영광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진급"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자리는 적고 사람은 많으니 인사철이면 온갖 뒷말이 무성하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기준으로 진급률이 소령은 95%, 중령은 80%, 대령은 50% 수준이다. 또한 국방개혁에 따라 군인의 꽃인 장군의 숫자를 15% 감축할 예정이어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진급이 늦어지거나 아예 경쟁대열에서 탈락하는 피말리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음해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투서를 부추기는 군 인사체계

투서는 표적이 분명해야 한다. 아무런 소득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투서를 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군의 인사체계는 투서를 부추기는 구조다. 인사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임관기수와 출신지역 등을 안배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경쟁자가 정해져 있어 이력과 배경이 비슷한 경쟁자를 낙오시키면 자연히 진급은 내 몫이 된다.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 경우 명목 경쟁률은 최소 4대1이 넘지만 실제로는 두 명 중에 한 명이 살아남는 양자택일의 경쟁구도인 경우가 많다.

진급 기준도 문제로 꼽힌다. 지휘관들이 말로는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사고 없는 군대'를 중시하다 보니 군 전체에 무사안일주의 성향이 적지 않다. 자연히 좌충우돌하더라도 능력 있는 군인보다 모나지 않은 흠 없는 군인이 선호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투서는 흠을 조장하거나 부각시키는 데 악용될 수 있다.

장교의 경우 소위로 임관하면서부터 개인 이력이 차곡차곡 쌓여 점수화된다. 경쟁자간에 걸어가는 길이 비슷하기 때문에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트집 잡힐 일이 없어야 한다. 공훈을 세워 표창이나 훈장을 제 아무리 많이 받아도 음주단속에 한번 걸리면 진급의 꿈을 접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군 관계자는 "투서는 보통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가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따라서 당사자는 충분히 해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인사를 앞두고 투서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인물도 투서에 개입

군의 독특한 인사방식도 한 요인이다. 계급별 적령이 되면 매년 한 번씩 총 세 번에 걸쳐 진급기회가 주어지는데 2차까지 미끄러지면 진급은 물 건너간다고 보는 게 통례다. 군인으로서 평생 간직해 온 꿈을 이루기 위해 1, 2년 사이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도 발탁 인사를 통해 진급의 길이 열려있는 경찰조직과 다른 점이다. 진급을 앞둔 상태에서 조바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투서라는 수단을 통해 분풀이 하는 이유다.

진급 당사자들만이 아니다. 후배들이 투서사건에 개입해 악역을 맡기도 한다. 어떤 선배가 진급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고에 따라 석연치 않은 물갈이가 이뤄지는 전례에 비춰 투서를 매개로 미리 줄을 서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예전 같은 사조직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인도 사람인데 선후배간에 어느 정도 친소관계는 당연히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군에서 '진급은 전투, 보직은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병과별로 진급 못지 않게 보직을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요직과 한직이 구분되기 때문에 눈에 띄는 주요 자리는 진급에 유리하기 마련이다. 이 또한 경쟁을 한층 가열시키는 요인이다.

정부 관계자는 "투서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문제해결 방식"이라며 "투서에 따른 반사이익을 차단할 수 있도록 군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 헌병장교 투서사건 내용은

지난 연말 불거진 헌병장교 투서사건은 현재 4차 조사 및 수사가 진행 중이다. 세 차례 조사를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 해 11월 초 육군 중앙수사단장 앞으로 무기명 투서가 한 통 배달됐다. 장군 진급 대상인 헌병병과 L대령이 2007~2008년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으로 재임 시 부대운영비 1억2,000만원을 빼돌려 고위 장성들을 상대로 백화점상품권 등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인사를 앞둔 시점이어서 군은 물론,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청와대 민정수석실까지 나서 합동으로 조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고 한달 후 L대령은 준장으로 진급했다. 정황상 허위제보일 가능성이 높고 수사기간도 충분치 않아 투서자에 대한 조사는 보류했다.

지난 해 12월 말 이번에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 앞으로 비슷한 내용의 투서가 전달됐다.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봉투에는 서울 서초우체국 소인이 찍혀있었다. 12월 초 취임한 김 장관은 "용납할 수 없는 해군(害軍)행위"라고 격노하며 투서자를 색출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국방부 조사본부는 2차 조사를 벌여 1월 말 투서자가 L준장의 헌병병과 후배인 H중령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때부터 국방부의 설명이 석연치 않았다. 국방부는 L준장이 "사실관계를 떠나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전역지원서를 제출하자 사건을 내사 종결 처리했다. H중령도 처벌받지 않았다. 음해성 투서가 아니기 때문에 H중령은 투서자가 아니라 제보자라는 이유에서였다. 횡령과 진급비리라는 의혹의 핵심은 덮어둔 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어정쩡한 결론이었다. 조사본부와 L준장, H중령, 그리고 H중령의 후배로 L준장의 회계장부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P소령 모두 같은 헌병병과 소속이라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군 안팎의 비판이 거세지자 김 장관은 국방부 감사관실에 재조사를 지시했다. 동시에 L준장이 현역 대장 두 명에게 상납을 했다는 의혹도 추가로 불거졌다. 당사자들은 강하게 부인했고 논란은 더 커졌다.

이에 김 장관은 16일께 군 검찰도 사건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L준장의 자금 조성과 사용처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다. 수사기간도 당초 예정보다 1주일 늘려 다음 달 초까지로 잡았다.

김 장관은 18일 국회 답변에서 "(2007~2008년 당시) 헌병 간부는 진급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며 "(진급 로비는 아니고) 공금 유용과 연결해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수사가 끝나는 5월 중순 군비리 근절 종합대책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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