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으로 마음을 열자 대화는 술술 풀렸다. 어머니 한순옥(55)씨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나비가 날듯 양팔을 벌린 채 손을 흔들며 걸었다. 유연한 에스(S)자를 그리며 무대 반대편까지 가는 10여초간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어머니의 동작을 따라 하던 딸 박은주(30)씨도 이내 웃음을 지었다. "항상 언니를 더 챙겨서 네가 서운했겠구나. 미안하다."(어머니 한씨)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를 악물었고, 대학 편입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괜찮아요."(딸 박씨)
19일 오후 인천 중구 해안동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에 모녀 8쌍이 모여 춤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 29일 세계 춤의날을 앞두고 국제무용협회 등이 마련한 커뮤니티 댄스 수업에서다. 핀란드의 커뮤니티 댄스 전문가 한나 브로테루스(42)씨가 강사를 맡은 이 수업은 18일부터 2주간 진행되고 있다. 커뮤니티 댄스는 서유럽에선 인간관계 회복을 위해 널리 알려진 춤 치료요법. 외국 전문가가 국내에서 수업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수업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여덟 살 딸을 둔 유은정(32)씨는 "화가 나도 그걸 네 앞에서 감춰야 하는 게 싫어"라며 양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어머니의 생소한 모습에 딸은 신기해하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딸들도 오늘만큼은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전했다. 어머니와 다퉜던 기억을 떠올리는 과제가 주어지자 정두리(23)씨는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발을 구르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맏딸이라 어머니에게 화가 나도 참아왔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아경(8)양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내버려두세요"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양의 어머니 오선화(42)씨는 "자유롭게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남모르게 구속 받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도 있었다. 연극배우인 김은영(36)씨가 "엄마는 네가 짜증내는 게 너무 싫어"라며 찡그린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자 고성에 놀란 딸 송미소(9)양이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린 것. 김씨는 "평소 집에 오면 자정이 넘을 때가 많아 안쓰러웠는데…"라며 딸을 꼭 끌어안았다.
이날 연습이 끝나고 한나 브로테루스씨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몸짓을 통할 때 훨씬 쉽다"며 "엄마와 딸이 이렇게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면 모성, 사랑이라는 감정이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연은 29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진행되는 2011 세계 춤의날 공식행사에서 볼 수 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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