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의 초대손님은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은 가수 윤복희였다. 그러나 이날 최고의 화제는 그의 가수인생 60년이 아니라 재혼 비사(秘史)였다. 윤복희는 두 번째 남편이었던 가수 남진에 대해 "그를 사랑한 게 아니라 이용했다"고 케케묵은 과거사를 공개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남편뿐인데 (남진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기사에 흔들려) 나약해진 남편에게 서운해 홧김에 이혼하고 (남진과) 재혼했다"는 취지였다. 그가 6개월 만에 파경을 맞은 재혼에 관해 입을 연 것은 처음이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날 '황금어장'은 전 주보다 소폭 오른 13.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충격 고백'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난 셈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폭로에서 과거사 폭로로 한 발 더 독하게 나가고 있다. 독한 예능코드는 특히 추억의 스타들의 귀환에서 두드러진다. 오랜만에 TV에 얼굴을 비치는 이들은 이목을 끌만한 센 '한 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연예인과 프로그램 제작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위해 한 건 터트려 달라는 식이고, 연예인들 역시 이런 예능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독한 예능 컨셉트에 맞춘 추억 팔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복희에 앞서 지난 13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가수 김완선은 전성기 시절 매니저였던 이모에게서 한 푼도 받지 못한 사연을 밝혀 화제에 올랐다. 18일 SBS '밤이면 밤마다'에 출연한 그룹 송골매 출신의 구창모도 오랜만에 예능 나들이에서 배철수와의 갈등으로 송골매를 탈퇴한 이야기며, 중앙아시아에서 사업을 하다 40억원을 탕진한 사연 등을 줄줄이 풀어놓았다. 지난달 KBS '승승장구'에 나온 남진도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나훈아의 폭행을 사주했다는 루머에 시달린 껄끄러운 과거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고백이 진솔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모두 컴백이나 콘서트 등을 앞둔 시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윤복희는 '무릎팍도사' 방송 바로 다음날 60주년 콘서트 기자회견을 열어 화제를 이어갔다. 김완선 역시 '무릎팍도사' 출연 며칠 후 새 앨범 발매 기념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모와의 불화 사연 때문에 더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구창모는 SBS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복귀한지 얼마 안된 터였다. 남진 역시 지난달부터 45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를 열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중견가수의 소속사 대표는 "방송사에서 먼저 섭외가 오기도 하지만 콘서트 등 홍보가 필요하면 직접 예능 출연을 자처한다"며 "방송사는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든 사생활을 끄집어 내려고 하고 기획사도 사정을 다 아니까 알아서 움직이는 게 이 바닥 생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굳이 홍보를 할 필요가 없어 예능 출연을 고사하고 있지만 TV에 한 번 나가서 이슈를 만들려는 가수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런 맞거래를 무조건 탓하기는 어렵다. '무릎팍도사' 박정규 프로듀서는 "'나는 가수다'나 '세시봉' 열풍이 일면서 앞 세대 가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섭외 배경을 밝혔다. 또 "연예인들이 어떤 의미에서 꼭 한 번 정리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프로그램에 담는다. 여러 소문이 많았던 김완선씨도 애증이 교차하는 이모와의 일을 대중에게 한번쯤은 풀고 가고 싶었던 것 같다"며 순기능을 강조했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이 돌아온 옛 스타들의 현재 삶에는 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충격 고백이라는 이름으로 추억조차 선정적으로 상품화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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