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죽음의 유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죽음의 유혹

입력
2011.04.22 12:00
0 0

1774년 청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실연한 이들의 모방 자살이 급증했다. 약혼자가 있는 샤로테를 사랑한 괴테 자신의 경험과, 유부녀에게 실연 당해 자살한 친구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한 젊은이의 열정적 사랑과 좌절, 죽음으로 그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죽음을 소재로 한 괴테의 다른 작품 <마왕> 은 여러 음악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 중 슈베르트의 가곡이 가장 유명하다. 아픈 아들을 말에 태우고 밤길을 달리는 아버지와 소년을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마왕의 이야기이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서 공포에 떨고 마왕은 위협이 아닌 달콤한 말로 소년을 유혹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라 부르며 아름다운 곳으로 가서 자신의 딸들과 함께 춤추자고 속삭인다. 유명한 바리톤 고(故)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는 <마왕> 의 가사를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하게 불러 듣는 이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마왕> 외에도 죽음과 관련된 곡을 수십 개나 작곡한 슈베르트에게 죽음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소년시절 어머니를 잃었고 10여명의 남매들이 성장하지 못한 채 죽었다. 끊임없는 가난과 불안한 미래 속에 항상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죽음을 공포로만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슈베르트는 더욱 달콤한 죽음의 유혹이 펼쳐진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죽음과 소녀'에도 음악을 붙였다. 작품 속 '죽음'은 살려 달라 애원하는 소녀에게 "나는 친구란다. 해치려고 온 것이 아니야. 내 품에서 꿈결같이 편안히 잠 들렴."이라며 영원한 안식으로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병으로 죽음에 이른 <마왕> 의 소년과 <죽음과 소녀> 의 소녀와 달리 자살한 베르테르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가족과 떨어진 근무지에서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게 된 베르테르는 그 상황을 벗어나려 또 다른 외지로 옮기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마주친 것은 상사와의 갈등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느낀 배신감, 귀족이 아닌 신분으로 느껴야 하는 수모뿐이었다.

괴테 자신이 실연의 상처를 고향으로 돌아가 치유한 것과 달리, 베르테르는 사회적으로 돌파구가 없는 상태에서 고향이 아닌 로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로테에게마저 희망을 찾지 못하자 결국 죽음을 택한다. 소설 속 베르테르를 보면서도 왜 서신을 주고받던 가까운 친구나 어머니를 찾아가 위로를 얻지 않았을까 마음이 쓰이는데, 하물며 외로이 기숙사 생활을 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대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슈베르트의 시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혼란기였다. 평등에 대한 열망과 민족주의의 발현,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의 통제와 감시가 공존하는 시기였으며 숱한 전쟁의 상흔으로 현실 도피적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낭만주의의 초입이었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처럼 질병으로 30대에 사망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죽음을 안락함으로 여길 수 있었던, 아니 여기고 싶었던 그런 시대였다.

21세기의 젊은이들이 '혼돈의 시대'에나 있을 죽음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것은 인생 선배들의 책임이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학생들의 자살을 나약한 사람의 선택이라 여기지 말고, 에밀 뒤르켐의 '사회적 타살'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김대환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