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기생자(寄生者)로 30여 년을 살면서 이 거대한 숙주(宿主)의 건강을 걱정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런 기자의 눈에 띈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라는 인터넷 글귀. 문득 숙주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졌다. "많이 아프냐?"
늘 그렇듯 대답없는 지구를 위해 일상의 편리함을 잠시 접어 보기로 했다. 먼저 트위터(@_karam) 친구들에게 지구 살리기 실천 요령을 물었다. 아이디어가 속속 도착했다. 그중 ▦자전거 출퇴근 ▦계단 이용 ▦개인컵 사용 ▦자리 비울 때 컴퓨터모니터 끄기 ▦전기플러그 뽑기 ▦음식쓰레기 안 만들기 ▦3분 내 샤워 끝내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첫번째 프로젝트는 자전거 출퇴근. 1km 이동을 기준으로 자가용은 210g, 버스는 27.7g, 지하철은 1.53g의 탄소를 배출한다. 송파구 풍납동 집에서 한국일보가 있는 중구 소공동까지 직선거리는 13km. 출근 구간은 천호대교를 건너 왕십리역과 동대문시장을 거쳐 청계천변 도로를 따라가는 코스. 19일 아침 출발 후 부닥친 첫 난관은 다리(천호대교) 건너기. 사람 한 명 겨우 지날 정도인 통로 옆으로 고속 질주하는 차량들이 토해내는 굉음이 공포스러웠다. 인도가 있어도 빠르게 꼬리를 무는 차량 행렬 때문에 건너기가 어려웠다.
자전거 전용도로도 실망스러웠다. 광나루역 사거리~답십리역 구간 자전거 도로는 하행선 한 방향으로만 설치돼 있었다. 기자는 회사 방향으로 줄곧 역주행을 해야 했다. 보호봉은 모두 뽑혀 있고, 전용도로 곳곳은 주차장이 돼 있었다. 답십리역 이후 청계천변 도로는 노상 적치물과 곡예운전 하는 배달 오토바이 때문에 사고 위험이 컸다.
1시간30분 만에 회사에 도착했지만 주차(?)가 문제였다. 빌딩 주변을 아무리 뒤져도 자전거 보관대는 없었다. 건물 옆에 슬며시 대려니 경비원들이 제지했다. 맴돌기에 지쳐 기진맥직해질 때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버스정거장 표지판에 자전거를 묶었다. 그리곤 도망치듯 회사 건물로 달려 들어갔다. 평소 버릇대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떠오르는 지구 살리기 실천사항 하나. 계단 오르기. 한국일보 편집국은 15층에 있다.
편집국 곳곳은 '지뢰밭'이었다. 밤새 작동했는지 컴퓨터와 모니터가 켜져 있고 플러그엔 전자기기들이 빼곡하게 연결돼 있다. 프린터 앞의 이면지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플러그를 뽑았다. 1시간여 업무를 본 뒤 미리 준비한 텀블러를 가지고 건물 1층 커피전문점으로 향했다. 물론 계단으로. 텀블러로 커피를 담으니 300원 할인을 받았다. 뿌듯했다. 다시 계단을 이용해 사무실로. 불필요한 각종 보도자료 팩스물은 이면지 활용을 위해 클립으로 고정했다. 갑자기 일회용품을 못쓰니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구를 살리려면….
점심시간. 구내 식당으로 향했다. 물론 계단으로. 벌써 몇번째 오르내리는 계단인가. 적게 먹고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도 지구를 지키는 중요한 방법. 식판에 담은 음식량은 평소의 절반 정도. 하지만 천천히 씹어먹으며 깨끗이 비워내니 제법 배가 부르다.
오후 7시 30분. 맥주 한 잔 생각을 간신히 억누른다. 버스정거장에 있는 자전거가 걱정이다. 다시 집을 향해 자전거를 몰았다. 달리는 내내 '샤워는 3분 이내'를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방문을 여니 씻을 힘조차 없다. 지구 사랑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하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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