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행복감은 나이가 들수록 줄다가 노년에 다시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보도됐다. 마스트리흐트대 경제학자인 베르트 판 란데흐헴이 영국 왕립경제학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희망과 포부가 충천한 20대부터 짊어진 짐이 많아지는 40대까지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은 계속 떨어진다. 그러다 50대부터 다시 만족감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 연구가 의외인 것은 죽음이 가까울수록 불행하다는 통념을 뒤엎기 때문이다. 사실 인생의 행복감이 U자 곡선을 그린다는 것은 이미 숱한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미 국립과학원이 인구 34만명을 조사했을 때도 40대 후반부터 행복감이 오르기 시작해 85세에 절정에 이른다는 답변이 나왔다. 전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역시 경제학자인 워윅경영대 앤드루 오스왈드와 다트머스대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교수는 72개국에서 중년에 행복감의 바닥을 친다는 일관된 경향을 확인했다. 나라에 따라 '바닥의 나이'만 달랐을 뿐이다. 72개국 평균의 불행 나이는 46세였다.
하나 남은 주차자리 앞에서 노인 운전자를 제치고 잽싸게 차를 세운 20대가 "재빠르고 젊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으스대자, 노인이 젊은이의 번쩍이는 새 차를 태연히 받아버리고는 "돈 있고 나이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웃고 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노년에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은 통념적인 행복의 조건_젊고 늘씬하고 체력 좋고 돈이 많은 것_을 갖춰서가 아니라 처한 조건을 더 잘 수용하고 활용할 줄 아는 덕분이다. 나이가 들면 없는 것이 욕심나기보다 가진 것이 소중하다. 싫어하는 것을 굳이 하지 않을 줄도 안다. 자기에 대해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젊은이들만큼 화를 내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모든 이들의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여유와 체념이 노년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이야기인데, 버지니아대 심리학자 조너선 헤이트의 을 보면 행복감을 높이는 외적 조건이 없지는 않지만 주관적 태도가 크게 작용한다는 게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결론이다. 흔히 제1조건으로 꼽히는 돈조차 먹고 살 정도를 넘으면 별 변수가 되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은 놀랍도록 적응력이 뛰어나 남 보기엔 불행하기 짝이 없을 상황에서도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능력이다.
그러니 문제는 U자 행복곡선의 깊은 바닥에 있는 40대다. 란데흐헴의 연구를 보도한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년이 힘들다는 이런 뻔한 연구에 돈을 낭비하느냐" "부모와 사는 20대와 두둑한 연금을 바라보는 50대 윗세대가 뼈빠지게 일하는 중년보다 행복한 건 당연하다"는 독자들의 푸념이 올라와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서도 동서양이 따로 없다.
40대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무거운 책임을 질 나이다. 사오정(40~50대 정년) 시대이니 고민은 더 깊다. 게다가 주관적 행복의 조건이라는 체념과 포기, 부족한 현실에 대한 인정, 용서 등이 납득되기는커녕 핑계와 비겁으로만 여겨지고, 아직도 가는 청춘이 아쉽기만 하다. 주·객관적 상황이 이러하니 불행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저 언젠가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군"이라고 느낄 마법의 순간이 닥쳐서야 그것이 관조의 힘이라는 것을, 열정의 대가로 얻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리라 짐작할 뿐이다.
김희원 국제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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