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살고 죽고/권남희 지음/마음산책 발행ㆍ248쪽ㆍ1만1,000원
"야가 우리 망내이 딸인데 번역 일을 해." "버녁이라 카는 기 머이껴?" "아, 그거는 일본 글을 조선 글로 바꾸는 기라." "아이고, 기술도 잘 배았니더. 딸내미한테 우째 그클 존 기술을 갈찼니껴."
일본어 번역가인 저자의 어머니가 먼 친척 할머니에게 자랑하는 대목이다. 번역은 친척 할머니의 말 대로 좋은 기술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기술 같으면 20년 가까이 하다 보면 '생활의 달인'에 나가도 나갔을 텐데, 이 놈의 기술은 끝이 안 보인다"며 "너무 어려운 기술"이라고 저자는 토로한다.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소설을 영문으로 옮긴 번역자가 관심을 끌었지만 한국에서 번역가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다. 올해로 경력 20년 차에 접어든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가 쓴 <번역에 살고 죽고> 는 번역가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번역에> 엄마를>
저자가 장당 600원을 받고 다른 번역가의 이름으로 대리 번역을 한 입문 시절부터 시작해 유미리,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다 지로, 온다 리쿠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이름이 알려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번역 인생이 그려져 있다. 일본 도쿄의 대형서점과 헌 책방을 돌아다니며 번역거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에세이집에서 글을 골라 짜깁기 책을 내기도 하고, <동경신혼일기> 란 책을 직접 쓰기도 하면서 그의 번역 인생은 무르익어갔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 문학은 극소수 작가들의 작품 외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98년 일본 문화 개방 조치로 일본 소설이 널리 소개돼 지금은 그의 이름을 아는 독자들도 많고, 그가 번역한 작품을 찾아 읽는 팬이 있을 정도가 됐다. 동경신혼일기>
그에게는 번역가 지망생들로부터 진로 상담이 수없이 들어온다. 열이면 아홉에게는 부정적인 답장을 한다. 번역가란 타이틀에 환상을 품은 대졸 출신들이 연수입 1,000만원에 만족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지망생들은 대부분 번역에 대한 생각이 너무 안이하고 단순하다. 영어 책만 해석할 수 있으면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는 줄 안다. 마음만 먹으면 일거리가 뷔페 식으로 차려져 있는 줄 안다."
번역가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느냐는 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작가와 호흡을 함께하며 한 단어, 한 단어 옮길 때의 기쁨이…"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집에서 작업을 하니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고백한다. 번역가를 엄마로 둔 덕분인지 말하기와 책 읽기를 일찍 깨친 딸과의 일상생활이 알콩달콩 흥미롭다.
이 책은 번역에 대한 환상을 깨지만 그러면서도 후배들을 위해 좋은 번역의 사례, 검토서 작성법, 번역료 정하기, 일이 끊어졌을 때의 대처법 같은 번역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 자세하게 조언한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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