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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공포, 불신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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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공포, 불신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입력
2011.04.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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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불신을 먹고 자란다/프랭크 푸레디 지음ㆍ박형신 박형진 옮김/이학사 발행ㆍ368쪽ㆍ1만9,000원

'당신이 항공기 배 버스로 여행할 때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나 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조사한다.'영국 소비자 안내 책자 위치(which)의 1986년 7월호 광고 내용이다. 공포를 마구 퍼 나르는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2006년 5월 미국 ABC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가상 조류인플루엔자(AI)의 전국적 유행에 관한 재난 영화 '치명적 접촉: 미국의 AI'는 사람들이 패닉에 빠진 장면으로 시작해 무서운 전염병의 결과로 대부분의 주민이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보건 당국의 해명에도 AI 공포는 점점 더 확산됐다.

한국으로 가 보자. 구제역 파동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뜨거운 불에 육류를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는 해명이 나와도 고깃집은 망한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누출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을 때도 비슷한 사태가 빚어졌다.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정부가 누차 해명했지만 대기 중에 방사성물질이 극미량 나타나자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다.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고 비옷 우산 장화 마스크 등 판매는 급증했다. 시금치에서 극미량이지만 방사성물질이 나오자 공포는 유령이 돼 야채 시장을 일거에 내려앉게 했다.

현대사회에서 삶의 일부가 돼 버린 공포의 실체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헝가리 출신 사회학자인 프랭크 푸레디의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가 그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단순히 특정한 위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하나의 문화적 은유로서 공포는 현대사회를 규정짓게 된 중요한 키워드"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주변을 떠돌다가 한 순간에 우리를 엄습하는 공 포문화의 원인으로 인간 불신을 지목한다. 그는 일단 모든 사회에는 언제든 불확실성이 존재해 왔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 불확실성을 축소하는 데 기여해 왔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환경 파괴와 같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인간이 과학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 것은 급기야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도 저버리게 했다.

"내가 우리 대학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을 때는, 모든 학생이 시내에 나가거나 좀 더 멀리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 히치하이크를 했다. 나는 자주 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20~25명의 활기찬 학생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어떤 학생도 히치하이크를 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 함께 차에 탄다는 생각은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제 차를 태워 주는 행동은 사교적인 행위, 더 나아가서는 이타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대신에, 범죄의 전조로 이해된다. 유감스럽게도 시민의 책임을 연습할 기회가 상실되고 말았다."

책은 공포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상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인간 불신에 있다고 본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표현이 유독한 인간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노인은 젊은이에게 폭력과 폭행의 위험을 느낀다. 유독한 인간은 또래와 동료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부모는 교사가 학생을 걱정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교사는 부모가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마디로 현대사회의 공포 문화를 특징짓는 것은 인간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공포이다. 이로 인해 공포는 독자적 실체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통제 밖에 있던 자연, 핵이나 유전자조작 식품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위험한 대상에 대한 공포, 특정 대상이 없는 위험의 가능성에 대한 공포의 순으로 발달해 왔다.

이제 공포는 그 대상에서 자립해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확실한 것, 알 수 없는 것에 달라붙게 됐다. 광우병의 실체보다는 광우병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이유도 여기 있을지 모른다.

책은 위험에 대한 경고만으로는 공포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조치들은 공포를 줄이기는커녕 위험을 학습시키고, 공포를 확대재생산하며, 공포 산업을 육성시킬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포에 떨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공포에 대한 자기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저자는 공포 문화를 조장하는 원천을 지목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소비자 행동주의는 영국인의 무관심 위에서 번성하고 있다. (중략) 그 결과가 바로 종래의 불완전한 의회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제한적인 과두제적 형태의 정치다. 이것이 공포를 작동시키고 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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