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내리셔서 2번 출구로 나오시면 만두집, 피자집, 커피숍이 나란히 보일 거에요. 그 길을 따라서 쭉 올라오시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요, 건너지 마시고 패스트푸드점을 끼고 돌아서 80m 정도 직진하시면 좌측에 강북경찰서가 보입니다.”
서울 강북경찰서 112 지령실에 근무하는 전희경(42) 경위의 길 안내는 거침이 없었다. 지도를 보지도 않고 막힘 없이 술술 설명하는 게 현장을 걷고 있는 듯 했다.
길 안내의 ‘숨은 고수’ 전 경위가 서울경찰청이 7일 개최한 ‘길 학습 경연대회’112 지령실 부문에서 남자 직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대회는 경찰의 출동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관내 지역의 주요 도로, 학교, 은행, 성폭력 범죄자 거주지 등 주요 관찰 대상을 지도에 그려 넣는 게임이다.
특히 112지령실 근무자들은 범죄 신고를 접수 받고 지구대 직원들이 현장에 최대한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지름길을 안내해줘야 하기 때문에 관내를 구석구석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골목길 등 복잡한 지역은 길을 알고 있는 지령실 근무자가 무전으로 실시간 설명해주는 게 더 빠르다고 전 경위는 귀띔했다.
전 경위는 올 2월 강북경찰서 112지령실로 발령받았지만 10년 넘게 수유동에 거주해온 강북주민이라 관내 지도를 그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열흘 가량 지도 그리기 연습을 따로 하긴 했지만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길을 익혀둔 게 도움이 됐다.
학창시절부터 지도에 관심이 많았다는 전 경위의 취미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새로 생긴 가게가 없는지, 간판이 바뀐 집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 “한번은 신고자가 수유동에 있는 (지금은 없어진) 천지극장 근처라고 설명을 하는데 젊은 순찰대원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한참을 헤맨 경우가 있었죠. 제가 새로 들어선 건물 이름을 댔더니 같은 장소라고 하더군요. 어르신들은 이렇게 예전 건물 이름을 대면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 경위의 길 안내 능력은 업무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아들이 납치당했다는 전화를 받은 신고자가 당황해서 위치 설명을 제대로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알려준 몇 개의 단서를 조합해 지구대 직원에게 빠르게 안내를 한 덕에 결국 ‘보이스피싱’인 것을 알아내고 범죄를 막았죠.”
전 경위는 “범죄자들이 도망을 가더라도 신속히 검거할 수 있도록 강북구뿐 아니라 인접지역인 성북, 노원, 도봉구 지역도 샅샅이 파악해 볼 것”이라며 “당장 오늘부터라도 퇴근하면 자전거로 현장 답사에 나서봐야겠다”며 웃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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