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 경남 하동의 섬진강가와 쌍계사 가는 길의 화개천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만개한 벚꽃을 만끽하러 나온 상춘객들 때문이다. 흐드러진 꽃사태에 담뿍 취하고 또 취했다.
벚꽃이 피어나는 섬진강과 화개천에 몰려든 건 여행객만이 아니다. 절정의 봄을 노래하는 자리를 더욱 빛내주는 귀한 손님들이 있었으니 봄의 전령을 자처하는 황어와 참게, 재첩이 그 주인공이다.
꽃구경하러 바다에서 올라온 황어
황어는 저 먼 바다를 한 바퀴 돌아 고향을 찾아온 물고기다. 잉어과인 황어는 대부분의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고 강으로 찾아든다. 연어처럼 자신이 태어난 강기슭에 알을 낳기 위함이다. 연어와 다른 건 연어는 산란한 후 강에서 생을 마치지만 황어는 다시 바다로 살아 나간다. 황어는 30~50cm 길이의 어른 팔뚝만한 크기에 날렵한 몸매를 지녔다.
섬진강을 거슬러 오른 황어가 알을 낳기 위해 찾는 곳은 섬진강 지류인 화개천의 중상류 지역. 화개면 법하리 약수장 유역에서 황어를 낚는 이명재(48)씨를 만났다. 그는 투망과 걸갱이 두 가지 방식으로 황어를 잡는다고 한다. 걸갱이는 화개사람들만 쓴다는 전통 어구. 대나무 끝에 줄 달린 낚시바늘을 걸어놓은 것으로 물속에 가만히 넣고 있다가 옆을 스치는 황어같은 물고기를 낚아채는 어구다.
이씨가 방금 잡은 황어를 꺼내 들었다. 꿈틀대는 황어의 몸부림이 격하다. 힘이 좋은 황어는 수십cm 되는 보나 장애물쯤은 쉽게 뛰어 넘는다고 한다. 산란기 황어의 몸엔 오렌지빛 띠가 나타나 비단잉어를 연상케 한다. 이씨는 “벚꽃 구경하러 온 황어가 벚꽃이 시들며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이달 말까지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황어는 주로 회와 무침으로 먹는다. 화개사람들은 예전엔 황어를 주로 시래기를 넣고 어탕으로 끓여먹었다. 한 솥 푸짐히 끓여 이웃들과 나누던 정감 어린 음식이다. 접시에 썰어둔 황어회는 얼핏 숭어와 비슷해 보인다. 황어회에 참기름과 쌈장, 고추 다짐 등을 묻혀 입에 넣으니 고소한 맛이 별미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황어회무침도 맛나다. 화개에서 은어와 재첩 요리로 유명한 설송식당(055-883-1866) 등에서 황어회를 맛볼 수 있다.
하동의 토속 참게요리, 참게가리장
섬진강의 봄맛을 책임지는 또 하나는 참게다. 하동 섬진강 참게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에서 자라 비린 맛이 덜하다. 참게 본연의 맛 또한 강해 명품 대접을 받는다. 많이 알려진 참게 요리는 참게장과 참게탕. 하지만 하동에 또 다른 토속 참게 요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바로 ‘참게가리(가루)장’이다.
참게를 가루처럼 빻아 만든 게 아니라, 참게와 함께 다양한 곡물 가루를 넣고 끓여내는 탕이다. 음식이 귀하던 시절 참게를 적게 넣더라도 양을 늘려 여럿이 먹기 위해 밀가루를 풀어 만들던 데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한다. 이제는 밀가루 대신 쌀가루, 들깨가루, 콩가루 등을 듬뿍 넣고 구수하게 끓여낸다.
하동읍 화심리 돌팀이횟집(055-883-5523)에서 그 참게가리장을 맛봤다. 어떻게 끓이냐는질문에 주인 박명단(51)씨는 “잘 다듬어 놓은 참게를 끓는 물에 넣고, 참게가 익어갈 즈음 곡물가루를 넣는다. 이어 감자나 버섯 양파 대파 등 야채를 넣은 다음 간을 맞추고 한소끔 끓여내면 된다”고 했다.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걸쭉한 참게가리장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곡물의 구수함에 참게 특유의 시원함이 더해져 보통 참게탕 이상의 깊은 맛이 배어 나온다. 매운 고추의 칼칼함과 방아향이 더해져 입맛을 자극했다. 수저질이 바빠졌다. 돌팀이횟집의 참게가리장 가격은 3만~5만원.
시원한 재첩국 제철이 돌아왔다
꽃기운과 함께 섬진강에 찾아든 건 재첩이다. 재첩은 자고로 섬진강 하구의 것을 제일로 쳐왔다. 바다와 강이 만나고 모래가 많은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질 좋은 재첩이 많이 난다. 하동읍 강변에서 재첩을 잡는 분께 물어보니 올 재첩은 이달 4일부터 잡기 시작했단다. 아직은 소출이 신통치 않단다. 하루 5시간 강바닥을 훑는데 15~20kg 정도 건진다고 한다.
재첩은 보통 국으로 먹지만 제철을 맞은 재첩의 싱싱함은 갖은 야채와 초장에 버무린 재첩회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하동읍이나 섬진강변에는 재첩 맛집들이 즐비하다.
재첩을 취재하러 섬진강가를 돌아다니다 재미난 길을 만났다. 하동읍 화심리 강변 둑에는 순백의 ‘재첩길’이 있다. 길이 30여m 되는 뚝방길인데, 음식점에서 삶고 버린 재첩 껍질이 그 길을 가득 덮고 있다. 벚꽃길 바닥을 떨어진 꽃잎이 수놓는 것보다 더 화려하고 눈부신 길이다. 새하얀 재첩 껍데기들이 강물 위로 절정의 봄빛을 난반사해댔다.
하동=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하동
하동 가는 길이 가까워졌다. 전주-순천을 잇는 고속도로를 타고 구례IC에서 내리면 화개나 하동읍까지 30~40분이면 갈 수 있다.
소설 의 배경이 됐던 악양들의 평사리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마을 안에 고택을 옮겨 복원한 최참판댁과 TV드라마 세트장이 붙어있어 둘러볼 만하다.
하동엔 호텔급 숙박시설은 없다. 조용하고 쾌적한 하룻밤을 원한다면 화개천변, 쌍계사를 지나 칠불사로 가는 길의 '쉬어가는 누각'을 추천한다. 여울을 휘도는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깊은 숲 속의 기운을 얻어갈 수 있다. 아침 저녁 식사도 가능하다. (055)884-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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