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마맛트 오바트 아테레 미 베니 베네삭."(저도 당신과 다르지 않은데 왜 차별 받아야 하나요.)
스리랑카인 A(58ㆍ무직)씨는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상담위원인 권오훈씨를 붙들고 하소연을 이어갔다. 야근과 휴일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일한 공장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임금 400만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 지금은 당뇨 탓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데다 부인까지 아파 생계가 막막한 지경이라고도 했다.
이쯤 되면 본국으로 돌아갈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이주 노동자가 아니다. 8년 전 내전으로 멍들어있던 조국에서 그는 무장조직과 얽힌 경찰을 고발했다가 양쪽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에 왔다. 그 사이 두 차례 난민 지위를 신청했지만 인정받지 못했고, 취업 학업이 불가한 임시 비자를 갖고 현재 행정 소송까지 진행 중이다.
24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에서 열린 '난민 인권 순회 상담'에는 한국에 거주 중인 난민과 난민 신청자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인권위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난민협약 채택 60주년을 기념해 인권 노무 법률 의료 등을 한자리서 무료로 상담해주기 위해 마련했다.
난민협약은 난민을 '인종ㆍ종교ㆍ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 중 국적국 밖에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원치 않는 자'라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22명(2010년 말 기준)의 난민이 있다.
3년 전 파키스탄에서 온 B(26)씨는 딸의 교육과 일자리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수니파인 남편이 시아파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된 그는 "딸이 한국에 적응하려면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 고민"이라며 "저렴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 해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택한 이유를 묻자, "불법으로 뒷돈 주고 올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다소 충격적인 대답도 내놨다.
한국의 유색인종 차별 풍토를 지적하는 난민도 많았다. 영어 강사로 활동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C(41ㆍ무직)씨는 "똑같이 일해도 미국이나 캐나다 원어민보다 100만원 정도 적게 받는다"고 푸념했다.
우리나라가 난민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2년. 그러나 2000년까지 단 1명의 난민도 인정하지 않는 등 국제사회는 여전히 한국의 난민 정책을 소극적으로 보고 있다. 난민 신청자의 불안한 지위와 인도적 체류자격 취득자의 기초생활 보장 문제 등 과제도 산적해있다. 이날 상담에서도 자녀 교육과 높은 의료비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다수였다.
UNHCR 관계자는 "한국은 난민 인정 심사가 오래 걸리고, 심사 인터뷰 때 영어 한국어 외 언어는 통역조차 잘 되지 않는다"라며 "무엇보다 난민이라고 하면 후진국을 떠올리는 인식을 가장 힘들어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조사대상에 포함되는 상담 내용을 조사과로 보내 구제 조치하고, 정책검토 및 실태조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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