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밭에서 기름 캐는 '대기업 농부들'
19일 SK케미칼 울산 공장. 탱크로리(대형 유조차)에 가득 담겨 있던 팜유(Palm Oilㆍ기름야자에서 짜낸 기름)가 공장 입구에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뒤편 저장탱크로 쏟아져 들어갔다.
260만ℓ 크기의 탱크에 모인 팜유는 쉴새없이 또 다른 관들을 타고 흘렀다. 멀리서 본 공장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인 증기기관을 연상시켰다. 거대한 증기기관처럼 여기저기 놓여있는 큰 탱크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관들로 얽히고 설켜있었다. 파이프 군데군데에서는 높은 압력의 증기가 거친 소리를 내며 새 나오고, 공장 한 켠 3층 높이의 집채만한 냉각탑에서는 한여름 장대비처럼 물방울이 쉴새 없이 쏟아졌다. 팜유가 다다른 종착역은 로켓을 4개 이어놓은 듯한 모습의 장치. 희뿌연 팜유는 이 장치를 거치자 마침내 황금빛 투명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식용의 팜유가 자동차 연료인 바이오디젤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SK케미칼의 울산 바이오디젤 생산공장이 언론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다.
바이오디젤은 팜유, 폐식용유와 같은 식물성 기름이나 동물성 기름을 정제해 경유처럼 만든 에너지를 말한다. 땅속에서 파낸 화석연료가 아니라 밭에서 만들어낸 기름인 셈이다. 고유가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신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바이오연료 등의 그린에너지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때문에 그린에너지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주목한 기업들이 너도 나도 이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24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국내 그린에너지 제조업체는 2004년 41개에서 2009년 146개, 지난해 215개로 급증했다. 그 선두에 국내 대기업들이 있다. 삼성은 폴리실리콘, 웨이퍼, 태양전지와 모듈 등 태양광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뛰어든 상태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기업들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납품하면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LG는 다른 분야로 영역 확대도 꾀하고 있다. SK는 지난해 11월 중국 최대 그린에너지 기업인 CECEP 그룹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수처리 등 4개 분야 사업에 공동 진출하기로 했다. 이 밖에 현대중공업, 포스코, GS, 한화, 웅진, OCI 등도 그린에너지 경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 과열 우려도 나오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우리나라 그린에너지 산업화 정도가 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 경쟁국에 한참 뒤져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이 분야 수출액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지난해 45억8,000만 달러로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세계시장 규모는 2,430억달러로 2020년에 현재 자동차시장 규모인 1조달러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지금은 과열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차세대 먹을거리 경쟁에서 뒤쳐질까 걱정해야 할 때"라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 바이오디젤 '환경개선+수출+고용' 트리플 효과 시선집중
19일 울산 남구의 울산공단. 이곳에 위치한 한 정유사로 대형 유조차가 수시로 드나든다. 원유에서 정제된 휘발유와 경유 등 다양한 종류의 기름을 실을 차들이 전국의 정유소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사이, 바이오디젤을 실은 차량이 간간히 눈에 띈다.
경유를 쓰는 소비자라면 이미 바이오디젤을 사용하고 있다. 생산업체는 바이오디젤을 정유사에 납품하고, 정유사는 이를 원유에서 정제한 경유와 섞어서 주유소에 공급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2006년 바이오디젤 보급을 위한 정부와 정유사 간의 자발적 협약에 따른 것이다.
SK케미칼 울산공장에서는 하루 340톤의 바이오디젤이 생산된다. 바이오디젤은 원료가 되는 팜유 등이 고온 고압의 플랜트 설비 속에서 알코올(메탄올), 촉매 등과 반응하는 에스테르화를 거쳐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벙커C유의 대체에너지로 쓰일 수 있는 에코300(35톤)과 물(30톤)이 부산물로 나온다. 이응윤 SK케미칼 바이오에너지 생산팀장은 “바이오디젤 생산과정에서 불필요한 부산물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바이오디젤은 현재까지 나와있는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환경개선 효과가 가장 크다. 바이오디젤 1kg은 경유에 비해 온실가스 발생량이 2.2kg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화학구조상 11~12%의 산소를 내포하고 있어 완전연소가 잘 되기 때문이다. 추가로 탄소배출권거래제에 따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식경제부가 외부기관에 용역을 의뢰한 결과 2009년 기준으로 혼합률 1.5%를 기준으로 환경개선에 따른 편익이 2,093억원으로 평가됐다. 이는 면세추정액 1,520억원 보다 많은 돈이다.
수출시장으로서의 잠재성도 무시할 수 없다. SK케미칼의 경우 지난해 싱가포르 트래이딩사에 바이오디젤 6만톤을 4,800만 달러에 수출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기술개발에 따른 부수익도 있다. JC케미컬의 경우 2008년 자트로파 착유플랜트 수출로 26만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SK케미칼이 특허를 가진 기존 석유 정제 설비를 활용한 바이오디젤 생산기술 또한 해외 각국에서 기술 수출을 요청하고 있다.
고용효과도 만만찮다.에너지관리공단의 연구 결과 바이오디젤 생산 플랜트에서 10만㎘당 1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경유는 BD2로 바이오디젤이 2%가 섞여 있다. 2007년을 시작으로 매년 0.5%씩 혼합률을 높인 덕이다. 국내에 등록된 바이오디젤 생산 업체는 15곳. SK케미칼, 애경유화, 엠에너지를 필두로 단석산업, JC케미컬, BDK, 에코솔루션 등이 한해 생산할 수 있는 총량은 104만㎘다. 하지만 정부 추정에 따른 가동률은 67% 수준에 불과하다.
바이오디젤의 경우 굳는 온도가 경유에 비해 높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기후에 따라 경유와 혼합 정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현재 기술수준에서도 최대 20%까지 혼합해도 사용에 불편함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어 생산설비의 과잉으로 보기는 어렵다.
생산원가 문제도 마찬가지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일정 규모 이상이 됐을 때 생산원가는 충분히 내려갈 수 있지만, 기존 정유사들은 이를 반기지 않는 눈치다. 바이오디젤의 혼합비가 늘어날수록 기존 정유사의 경유 판매량이 줄어들게 돼 손실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바이오디젤 연료가 0.5%섞이면 ℓ 당 약 2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보고있다. 일부 정유사에서 기존 바이오디젤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회사를 만들어 시장에 직접 참여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이오디젤은 거대 정유사와 경쟁하는 측면이 있어 면세 혹은 의무화 제도(RFS) 없이는 안정적 보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서는 면세제도를, 독일 영국 미국은 의무화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의무혼합제의 경우 2010년 기준으로 EU는 평균 5.75% 수준이다. 북미 지역은 BD2~BD5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바이오연료 연간 50만㎘를 쓰도록 하는 의무혼합제 도입을 논의 중이다. 중국의 경우 의무제는 시행되지 않았으나 하이난성이 BD10을 시행하는 등 각 성별로 자발적으로 혼합해서 쓰고 있다.
정부는 당초 올해 의무혼합제를 도입해 2020년까지 혼합비율을 해마다 0.5%씩 늘여 BD7을 달성할 계획이었지만 부처간 이견으로 도입을 연기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은 바이오디젤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장애가 되고 있다.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줄여 원료의 대량 장기구매를 통한 원가절감. 추가 기술개발, 해외농장개척 등의 추진이 어려워 경쟁력 확보에 장애가 되고 있다. 정부는 면세혜택을 2010년 중단할 예정이었으나 올 한 해까지로 1년 연장됐다. 면세액 증가에 따른 조세 감소를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경유 사용량 감소로 인한 유류세 감소 또한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원료의 안정적 확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바이오디젤 원료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팜과 대두로 2009년 기준으로 원료의 72%를 수입한다. 바이오디젤의 생산원가 중 원료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정도로 원료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안정적 수입선을 확보하기 위한 해외농장 확보가 필수적이다. 원료 공급 비율의 27.4%를 차지하는 국내 폐식용유도 수거율이 꾸준히 늘어 사업장의 경우 평균 60%이상을 회수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의 수거율은 15%로 낮다. 체계적인 수거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석유는 생활과 산업에 있어 중심이 되는 에너지 자원. 하지만 석유의 가치는 또 있다. SK케미칼 오명환 상무는“우리 생활에 쓰이는 대부분의 물건은 석유를 기초소재로 한다”며“석유는 에너지이기도 하지만 산업의 필수 소재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없어서는 안 될 소재를 남겨서 자손들에게도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이오디젤을 지켜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 해조류·미세조류는 '바이오 연료의 寶庫'
바이오연료 분야는 첫 발걸음을 뗀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차세대 원료와 기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분야다. 가장 주목되는 차세대 원료가 바로 조류(藻類)다.
곡물이나 팜유 대신 해조류나 미세조류로부터 기름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현재 업계와 학계 등에서는 미역, 우뭇가사리 등 대형해조류와 식물성플랑크톤, 클로렐라와 같은 미세조류로부터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을 얻어내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조류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세조류는 몸 전체의 50%가 기름으로 돼 있어 연간 1만㎡ 당 최대 9만8,500ℓ 의 바이오연료를 생산할 수 있다. 전 세대 원료 중 가장 효율이 높은 팜유보다 약 16배 이상이나 높은 수준이다. 또 생산 공정에 따라 휘발유와 성능이 거의 비슷한 바이오 부탄올이나 높은 고도, 낮은 온도에서도 제 역할을 해내는 항공유를 만들 수도 있다. 생산성도 높고 다양한 활용도를 가진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또 조류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인 바닷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곡물 원료에 비해"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연료를 만든다"는 식의 윤리적 논란과 식품 가격 상승 등 문제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 미세조류의 경우 바닷물, 호수, 폐수 등 거의 모든 물에서 자라 수질정화 효과를 부수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조류 자원이 풍부한 우리 나라 입장에서 그 어느 그린에너지보다 바람직한 원료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모든 그린에너지의 숙제인 가격 경쟁력이 아직은 낮은 상태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미세조류를 이용한 바이오디젤 생산 비용은 ℓ 당 1.48~5.38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석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일 경우 바이오디젤 생산 비용이 ℓ 당 0.55달러를 넘는다면 채산성이 없다"는 한 연구결과를 감안하면 아직은 생산비용이 적정 비용의 3~10배에 이른다는 얘기다.
현재 각국은 조류 바이오연료의 합리적 생산을 위한 연구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2009년 5월 발표한 신성장동력 종합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세계 최초 해조류 바이오에탄올 파일럿 플랜테이션 건설을 2012년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해양생물을 이용한 바이오에너지 기술개발사업 연구개발을 2018년까지, 해조류 바이오매스 양산 및 통합적 활용기술 개발도 조속한 시일 내에 완료한다는 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조류 바이오연료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어 제대로 개발이 이뤄질 경우 기존 화석연료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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