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간담회 재구성해보니…"이익 절반이 카드에서 나왔다면서요""카드 영업 무작정 억누르면 서민들 대부업 전전"
18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렸던 금융당국 수장과 금융지주회사 회장 간담회.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금융계 별들의 회동이었다는 점에서, 취재진이 빠진 뒤 실제 어떤 얘기들이 오갔을지 궁금증이 끊이질 않는다. 간담회 참석자 및 배석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당시 간담회를 재구성해 봤다.
오전 8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모두 발언이 끝난 뒤 시작된 비공개 회의.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돼 논의가 이뤄진 것은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문제였다. 김 위원장이 "최근 건설사 PF에 대해 금융권 대응이 소극적"이라며 각 지주사에 적극적 지원을 주문하자, 이팔성 우리금융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등이 "사업성 있는 PF 대출까지 한꺼번에 회수하면 건설업계 타격이 클 수밖에 없으니 서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일부 반론를 제기했다. "PF대출 만기연장을 지원하라는데 은행이 담보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지원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현실론을 제기한 것. "금융당국도 PF 사업장을 이익이 나는 구조로 바꾸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었다.
지주사 회장들이 신경전을 벌인 주제는 계열 신용카드 회사의 과당 경쟁 여부. 김 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카드론 증가 등을 지적하며 과당 경쟁 자제를 요청하자 산은지주 강 회장이 적극적인 지원 사격에 나섰다. 강 회장은 "내 생각에는 카드론 자체가 고리대금업"이라며 "카드사들이 높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카드론 영업을 하니까 저축은행이 설 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카드사들이 카드 비즈니스를 해야지 저축은행 영업을 하면 되겠느냐"고까지 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산은지주를 제외한 나머지 4개 금융지주가 공격적으로 카드 영업을 하는 것을 겨냥한 발언 아니었겠느냐"고 해석했다.
지주사 회장들 간에 상대 급소를 찌르는 질문도 이어졌다. 1위 카드사 신한카드를 거느린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서는 "작년 2조원 이익을 냈다던데 1조원이 카드에서 나온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최근 공격적으로 카드 영업을 주도한다는 평가를 받는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에게는 "카드업을 강화하려 한다는데 왜 그러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이에 한 회장은 "카드 영업에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도 있다"며 "무작정 카드 영업을 억누르면 서민 고객이 저축은행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업체 등을 전전할 수 있게 된다"고 반박했다. 어 회장도 "KB금융이 과당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그는 "최근 은행에서 리스크 담당을 맡던 임원을 카드로 발령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쏟고 있다"며 "1분기에는 카드사 시장점유율이 작년 말보다 오히려 소폭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캐피탈, 농협 등의 잇단 전산 사고와 관련해서는 IT 인력의 과도한 아웃소싱이 화두가 됐다. 지주사 회장들은 "아웃소싱 없이 정규직으로만 채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한 반면, 김 위원장은 "아웃소싱을 하더라도 최고경영자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가 끝난 시각은 오전 9시40분께. 한 배석자는 "한 사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사람 말이 이어지는 등 매우 열띤 분위기였다"며 "지주사 회장님들이 서로 의견을 내려는 통에 간담회 시간이 당초 예상보다 10~20분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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