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부르는 구제금융
남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구제금융=정권교체'는 이제 공식으로 굳어졌다. 1997년 11월 한국의 구제금융 사태가 다음달 대선에서 야당후보(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듯, 재정위기를 맞은 나라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집권당이 정권을 내놓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유럽은 정부 수반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내각제 국가가 많아, 위기는 곧바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대표적 사례가 아일랜드. 14년을 장기 집권하며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불린 아일랜드의 번영을 주도해 온 공화당은 구제금융 사태를 맞으며 2월 총선에서 허무하게 정권을 내줬다. 2009년 반대 여론에도 불구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의 국민투표 통과를 이끌며 리더십을 과시한 브라이언 코웬 전 총리도 권좌에서 내려왔다.
구제금융을 거부하다 이달 초 끝내 유럽연합(EU)에 도움을 요청하며 무릎을 꿇은 주제 소크라테스 포르투갈 총리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지난달 말 정부가 제출안 재정긴축안이 세번째 부결된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힌 것. 포르투갈은 6월 5일 조기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핀란드는 자국이 위기를 맞지 않았지만 집권당이 남유럽에서 날아온 유탄을 맞은 경우. 17일 총선에서 다른 국가에 구제금융을 지원해야 하는지가 이슈로 떠올랐고, 구제금융에 반대한 극우정당 트루핀스(진짜 핀란드인)당이 제3당으로 약진했다. "우리가 저 먼 남유럽에까지 세금을 대야 하냐"는 국민정서를 파고든 것. 41세 여성 총리 마리 키비니에미가 이끄는 중도당은 제4당으로 추락했다.
할아버지ㆍ아버지에 이어 3대째 총리에 오른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매우 이례적으로 자리를 지킨 경우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의 특수 상황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서유럽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 때문에 구제금융이 닥쳤다는 게 그리스의 바닥민심"이라며 "구제금융을 받으면 복지가 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좌파인 사회당에 대한 정권교체 압력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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