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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15>' 풍류로드'… 전통 예인들의 자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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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15>' 풍류로드'… 전통 예인들의 자취를 따라

입력
2011.04.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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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이 따로 없다. 멋과 흥에 젖어 꿈길을 노닐었다. 오래된 중국집의 허름한 방에서 여든 세 살 마지막 예기(藝妓)가 들려준 육자배기와 곰삭은 춤은 가슴에 콱 박혀버렸다. 농민들이 정성껏 차려준 밥상을 받고, 그들의 들노래를 즐겼다. 호남 우도 농악의 설장고명인은 손수 농사지은 딸기를 대접하며 신명을 풀어냈다. 이런 호사가 또 있나. 소리꾼과 광대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곳이 사라졌거나 희미해져가는 모습에는 다들 마음이 짠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16, 17일 마련한 제 1회 ‘풍류로드’에 펼쳐진 풍경이다.

풍류로드는 전통예인의 자취를 찾아가는 문화답사다. 첫 행선지는 내포 지방과 호남 우도. 내포는 충남 당진 서산 홍성 보령 태안 예산 일대로 음악이 발달한 지역이고, 전라도 서부 평야지대를 가리키는 호남 우도 또한 멋의 고장이다.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씨가 길라잡이로 나선 길에 60여명이 동참했다.

진작 좀 오지_서산 심화영의 한

버스로 아침 7시 서울을 출발한 일행이 처음 내린 곳은 충남 서산. 소리꾼이자 율객인 심정순(1873~1937)의 고향이다. 심정순 기념비가 서 있는 서산문화회관에서 그의 딸 심화영의 외손녀, 이애리씨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승무로 손님들을 맞았다. 요즘 승무와는 크게 다른, 담백한 격조가 돋보이는 춤이다.

심정순의 예술은 조카 심상건을 비롯해 아들과 딸에게 전해져 가야금산조와 병창으로 근대를 휘어잡았으나, 지금은 소리는 끊어지고 심화영의 승무만 남았다. 심화영은 중고제(충청 경기 지역 판소리)의 마지막 보유자였다. 일행은 그가 부른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녹음을 들었다. 그가 지녔던, 담백하고 화평한 중고제 본래 소리가 아니라, 나라 잃은 설움에 엘레지가 승하던 일제강점기에 시류를 좇아 손님접대용으로 익힌 소리였다. 영영 사라진 중고제의 마지막 초상은 그렇게 쓸쓸했다.

1998년 진옥섭씨가 명무초청공연에 올리려고 찾아갔을 때 여든 다섯의 심화영은 “진작 좀 오지”라며 아쉬워했다. 부축을 받아야 할 만큼 몸이 불편했다. 진씨는 “무대에 말뚝을 박아 붙잡고 춰서라도 그의 춤을 세상에 보였어야 했다”고 탄식했다.

만시지탄의 한은 심정순의 아들 심재덕이 운영하던 낙원식당에서 더욱 깊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광대들이 묵어가던 곳이 지금은 표지판 하나 없이 다 쓰러져간다. 서산시 읍내동,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변 낡은 집은 맞은편 모텔과 좌우로 식당에 갇혀 있다. 20년 넘게 살고 있는 80대 할머니는 집에 없었다. 멀리서 굳이 찾아온 손님을 맞은 것은 굳게 닫힌 녹슨 철제 대문과 기둥에 큼직하게 써놓은 ‘개조심’ 글씨뿐이었다.

농부들과 한판 놀다-홍성의 결성농요

서산을 떠나 홍성의 결성농요보존회관에 도착하니 정오가 넘었다. 잠시 일손을 놓고 달려온 농민들이 부지런히 마당 탁자에 점심상을 차렸다. 돼지고기 삶고 소머리국밥 끓이고 부침개 부치고 농사지은 딸기도 내놓았다. 베옷에 맨발 차림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음식을 날랐다. 수더분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결성막걸리를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국 막걸리 대회에 나가서 포천막걸리와 붙어서 2등 먹은 막걸리요. 많이들 드셔. 음식이 맛있을라나. 금방금방 해서 뜨끈하긴 할 텐데.”

푸짐한 인심에 다들 황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더니, 식사 후 결성농요 시연이 시작되자 흥이 달아 올랐다. 농부들이 논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의 신명이 봄 햇살을 타고 보는 사람들 피를 간지럽혔다. 제 자리에서 엉덩이 들썩, 어깨 우쭐, 엉거주춤 쭈뼛쭈뼛 하다가 에라, 놀자 하고 나와서 함께 춤을 추었다.

이곳 홍성군 결성면은 창극의 시조로 꼽히는 전설적 소리꾼 최선달(1726~1805 추정, 본명 최예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결성농요 소리꾼들의 뿌리다. 이날 시연의 장구잽이 최덕수(60)씨도 그의 9대 손이니, 결성농요의 흥은 핏줄에 녹아 흐르는 역사라 하겠다.

앵도를 똑똑 따다_군산의 마지막 예기, 장금도

이번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군산이다. 일제강점기 이곳 소화권번에서 소리와 춤을 익힌 민살풀이춤의 명인, 장금도(83)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수건 없이 추는 그의 민살풀이춤은 우리 춤의 즉흥성과 진멋이 살아있는 명무 중의 명무다.

그는 일제강점기 군산의 마지막 예기다. 그의 춤을 보려면 인력거 두 대를 보내야 했다. 요릿집에 불려가 춤을 추면, 이 방 저 방에서 와달라고 붙잡는 통에 소매가 찢어질 지경이었지만, 기생 어미가 하나뿐인 아들 앞길 막을까 봐 스물 아홉에 춤을 접고 꽁꽁 숨었다가 10여년 전 진옥섭씨에게 들켜 세상에 나왔다.

첫날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군산 시내의 오래된 중국집 빈해원. 식사가 끝났을 때 그가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자장면 한 그릇 먹으러 오시라”고 해서 왔는데, 큰 방가득 사람이 찼으니 그럴 밖에.

“이게 뭔일이여”를 연발하며 쑥스러워하는 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진씨가 바람을 잡았다. “장구에서 시간을 빼낸 것을 박이라 하고, 그 박 위에 선 것을 춤이라 하는데, 그 춤 이름을 장금도라 하더라.” 젊은 소리꾼과 악사들이 거들었다. 가야금 해금 장구 대금이 어울려 가락을 뽑고 판소리가 흥을 돋웠다. 그래도 “안 돼, 못 해”라고 고사하던 그가 일어섰다. “새야 새야 청조야 가지 마라”하고 나오는 육자배기 소리를 받아 불렀다. “마음이 산란하여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태산이 앞을 가리어 나는 못살겠네.” 단아한 육자배기였다.

이어 춤이 펼쳐졌다. 평범한 블라우스에 연두색‘쓰봉’차림에도 춤은 은은한 멋이 흘러넘쳤다. 손끝 동작이며 발디딤새 하나하나, 보일듯 말듯 들썩이는 어깨짓이 사무치게 아름다워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앵도를 똑똑 딴다’는 말이 있다. 가슴 뭉클하게 감동이 맺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경을 가리킨다. 그의 소리와 춤은 그렇게 앵도를 똑똑 땄다.

빈해원에 오기 전 일행은 그가 예기 시절에 인력거 타고 누볐을 군산 거리를 돌았다. 당시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요릿집인 명월관과 동양관, 그가 예기 수업을 했던 소화권번, 벚꽃 철이면 일본인들 게다짝 끄는 소리가 진동하고 요릿집 천막이 파시처럼 늘어섰던 월명공원 등으로 발길을 옮겼다. 소화권번은 시장통 생선가게로 변했다. 명월관과 동양관은 터만 남았다. 월명공원 벚꽃은 아직 안 피었는데, 젊은 소리꾼 정상희씨가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장단도 없이 불렀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마음은 뜨거웠다.

벽오동 심은 뜻은_담양의 지실초당

둘째 날 일행은 담양으로 갔다. 아름다운 전통정원으로 유명한 소쇄원에 들러 누각에서 해금 연주를 듣고 나서 찾은 곳은 남면 지곡리의 지실초당. 송강정, 면앙정, 삭영정 등 정자가 늘어선 길을 지나 당도한 가사문학관 뒤편에 지실초당이 있다. 명창 박동실이 소리를 가르친 곳으로, 김소희 임춘앵 한승호 등 쟁쟁한 소리꾼들이 거쳐간 곳이다.

창평 갑부 박석기가 지실초당을 짓고 박동실을 소리 선생으로 부른 1936년은 좋은 목 타고난 이들도 죄다 유행가로 돌고 판소리는 저물어가던 때. 지실초당은 서울 종로 3가에 있던 조선성악연구회와 함께 그 시절 판소리를 지켜 오늘이 있게 한 두 기둥이건만, 여기가 얼마나 특별한 장소인지 알리는 표지판은 전혀 없다.

지금 지실초당은 붕어찜을 파는 식당이다. 태풍에 뒷산에서 돌이 굴러내려 파손된 것을 원형을 살려 새로 지었다. 이 집 옆에 벽오동나무가 자라는 바위가 있다. 굵은 몸통은 베어져 밑동만 남고 곁가지로 가느다란 한 줄기가 솟았는데, 바위에 ‘금암’(琴巖), ‘석오’(石梧)라고 한자가 새겨져 있다. 가야금 만드는 데 가장 좋다는 게 오동나무다. 금은 악기요, 오는 오동을 가리킨다. 옛사람들이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 함이라 했다. 오동과 벽오동은 다르지만, 70여년 전 이곳에 벽오동을 심고 금암이라 새긴 뜻은 장차 큰 소리꾼을 얻고자 했음이리라.

지실초당에서 점심을 먹은 일행은 담양 와우리의 ‘담양농악 김동언 전수관’에서 여정을 마무리했다. 사재를 털어 이 집을 지어 우도농악을 가르치고 있는 설장구 명인 김동언(71)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장판에 콩 떨어지듯 토란잎에 빗방울 떨어지듯 한 장구 가락을 신명나게 베풀었고, 직접 농사지은 딸기를 대접하며 살가운 정을 주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답사객 변상문(50)씨가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동물원 호랑이가 아닌 야생 호랑이를 만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한량이 되고 싶은 공무원이라는 그는 “마음은 뿌듯하고 머리를 맑은 물에 헹군 듯 행복하다”고 답사 소감을 말했다.

호강에 겨워 탈 날까 두렵더니, 과연 그러하다. 1박 2일 여정이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은데, 돌아온 지 나흘이 되도록 심중에 소리와 춤이 출렁출렁, 병이 나도 단단히 났구나 싶다. 풍류에 감염된 탓일까. 입을 꼭 다물고 있어도 노래가 절로 흘러 나온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꿈이로다 꿈 깨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나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아이고 대고 허허 으으으 성화가 났네”(남도민요 ‘흥타령’)

풍류로드 두 번째 순서는 6월 25, 26일 경남 진주, 고성, 통영으로 간다. 평양과 쌍벽을 이루던 진주의 기방 문화, 농사꾼들의 들놀이 춤으로 이름난 고성오광대, 예술의 고장 통영의 남해안별신굿을 만난다. 그 풍류에 푹 젖어 한판 걸게 놀아볼 일이다.

사설이 길었다. 혜량하시길. 이만 더질더질.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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