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성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 말하려 해”
충무로에서 그처럼 깜짝 스타가 된 감독이 또 있을까. 2008년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영화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렇다 할 연출부 경험도 없었고, 내세울 만한 단편영화 수상 경력도 없었다. 별 이력 없이 장편영화 감독이 됐는데 데뷔작부터 대박을 터트렸다. 830만명이 그의 첫 영화에 배꼽을 잡았고 눈물을 흘렸다. 데뷔작으론 한국 영화 최고의 성과였다.
‘과속스캔들’의 강형철(37) 감독이 두 번째 영화 ‘써니’로 돌아왔다. 첫 영화부터 재기 넘치고 안정적인 연출력을 보여 줬던 그는 더욱 짜임새 있고 성숙해진 화법을 선보인다. 12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아직 후반 작업이 남아 있다”며 피로감을 드러냈지만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써니’는 고교 시절 함께 어울렸다가 마흔이 넘어 재회하는 일곱 여자의 왁자지껄한 소동과 사연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1980년대의 풍경이 21세기 중년의 일상과 섞이며 관객들에게 추억 여행을 선사한다. 강 감독은 “모든 사람은 자기 만의 역사를 지녔다. 내 어머니도 소녀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학창 시절과 마흔 넘어서의 삶을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를 그려 내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80년대 여고생들을 다루지만 그는 “딱히 (현재와의) 큰 간격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 소녀들이 그룹 빅뱅을 좋아하듯 당시 소녀들은 가수 박혜성 사진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지냈다”는 것이다. 그 스스로도 “어린 시절 80년대를 보내 아련한 추억이 있다. 그래서 만들 때 괴리감은 없었다”고 했다.
강 감독은 “당시 여고생들의 학교 생활은 상상에 의지해 만들어 냈다”고 했다. “시대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고, 당시 여고생이라고 특별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대신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80년대 모습을 허투루 그려 내고 싶진 않았다”고 밝혔다.
“연기력도 있고 성인 배우랑 얼굴도 비슷한” 어린 배우를 찾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디션을 엄청나게 보고 나서야 캐스팅이 이뤄졌다”고 강 감독은 말했다. 어린 일곱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강 감독은 “지휘하고 통제하려 하기보다 다들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10년 가까이 연기 활동을 중단한 홍진희의 캐스팅도 난항이었다. “부끄러워 하지 않을 영화 만들어 드리겠다”고 말해 마음을 돌렸다.
인상적 데뷔식을 치르고선 두 번째 영화에선 죽 쑤는 영화감독들이 종종 있다.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 신인으론 감당하기 힘들 흥행을 기록한 그인데 “징크스는 징크스일 뿐. 그런 건 잘 안 믿는다”고 말했다. “개인이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도 안 되면 운”이라고도 했다. “주변의 기대감에 대해서도 부담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전에 흥행이 잘 됐으니 이번엔 안 되도 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할만 하지 않냐”고 반문도 했다. ‘어느 정도의 관객 수를 기대하냐’는 질문엔 “관객을 수로 세고 싶지 않다.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셨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는 “흥행 코드도 난 잘 모르겠다. 일차 관객인 내가 즐거우면 된다는 것에 일단 포커스를 맞춰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고도 말했다.
강 감독의 아버지는 영화광이다. 강 감독은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며 영상 감각을 자연스레 길렀다. “아버지가 ‘과속스캔들’ 보고 여기저기 단점을 지적하셨다. 평론가 기질이 있는 분이라 이번 영화도 지적을 좀 당할 듯합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지적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강 감독은 은근히 아버지의 평가를 기다리고 즐기는 눈치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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