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쉬는 지난 일요일 큰 맘먹고 인천국제여자챌린저테니스대회가 열리는 인천 가좌시립코트를 찾았습니다. 테니스 동호회 클럽에 가입해 매주 토요일 테니스를 친 지 1년3개월만의 테니스 나들이였습니다. 최근 나름 기량도 늘지 않고 정체되는 것 같아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자극을 받아볼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버스와 지하철, 택시를 갈아타며 2시간 가량 걸려 도착해 코트에 들어서는 순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티켓을 사서 입장하겠거니 했는데 웬걸 여자단식 결승전이 열리는 코트와 주변에 간이의자를 설치한 관중석이 한 눈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무료 입장이라는 횡재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개운치 않았습니다.
물론 국내 랭킹 1,2위를 다투는 이진아(양천구청)와 김소정(한솔제지)의 결승전은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제대로 된 관중석이 없다 보니 몇 미터 앞에서 플레이하며 내지르는 기합소리는 물론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김소정이 세트 스코어 2-1로 역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을 보고는 낯이 뜨거워졌습니다. 우승 상금이 2,940달러, 준우승 상금은 1,666달러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가 찼습니다. 명색이 국제대회인데 우승상금이 2,940달러가 뭡니까.
혀를 차는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차라리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레슨 코치로 나서면 한 달에 우승 상금 2배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랭킹 포인트를 획득하려고 출전한다고 해도 이건 아닌데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테니스 국제대회의 효시는 KAL컵 코리아오픈 테니스대회 입니다. 국내 유일의 ATP(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 투어인 KAL컵 대회는 그러나 지난 96년 10회 대회를 끝으로 폐지됐습니다. 최저 상금 규모 및 관중 동원 능력 등과 관련한 ATP 투어 자격 요건에 미달됐기 때문이죠. 국제망신감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마이클 창'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오히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시상식 직후 진행된 경품 추첨이었습니다. 관중이라 해야 대회 관계자, 선수 가족 등 200명이 채 안됐는데 경품권은 1,300장 가량 팔렸습니다. 경품권 1매 가격은 3,000원이었습니다. 경품은 테니스 공과 라켓에서 세탁기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품을 타기 위해 심지어 100여장을 구입한 사람도 있었다는 겁니다. 상품 2~3개를 건지면 본전은 뽑을 수 있다는 심리였겠죠. 실제로 3~4번씩 경품을 타 간 행운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300장의 경품권을 팔아 대회 운영비에 보탤 수도 있겠지만 우승상금 2,940달러와 비교하니 척박한 한국 테니스계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마지막 추첨이 압권이었습니다. 세탁기까지 주인을 찾은 뒤 자리를 뜨려는 관중에게 사회자가 한 가지 깜짝 제안을 했습니다. 관중석 등 열악한 여건에도 관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사회자가 사재를 털어 10만원을 걸고 마지막 추첨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사회자의 손에는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권 2장이 쥐어졌고 얼마 뒤 5만원권은 행운의 주인공에게 건네졌습니다.
기자는 같이 간 후배와 테니스를 치며 몸을 풀긴 했지만 연신 공을 때리면서도 마음은 영 찜찜했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도 관전하고 경품 이벤트도 지켜보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냈지만 마치 '그들만의 잔치'를 엿본 것 같아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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