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솟고 있는 '사막의 기적'
우리 플랜트 업계가 연일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중동 민주화 사태로 해외플랜트 수주가 주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수주 규모가 더욱 커지고 지역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본보는 플랜트 업계의 성공 비결을 탐구하고 우리 근로자들의 땀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대표적인 해외 플랜트 공사 현장 세 곳을 현지 취재했다.
소금기를 머금은 걸프만의 봄바람이 사막의 열기를 식혀주는 바레인의 첫 인상은 생각과 달랐다. 수도 마나마의 신 시가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 건물들은 중동의 소국이라는 선입견을 일축하듯 그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기자를 태운 자동차가 킹하마드 고속도로에 올라 남쪽으로 방향을 틀자 이 같은 풍경은 신기루처럼 삽시간에 사라졌다. 동승한 박병옥 현대중공업 차장은 "바레인은 과거 중동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두바이 등에 밀려 쇠락한 상태"라며 "최근 들어 두바이를 모방해 고층 건물을 올리고 있지만 인구가 100만 정도인데다가 외국인 투자도 적어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기루가 사라진 자리에 사막이 나타났다. 모래 벌판을 40여분 정도 달리자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곧 이어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중공업의 로고가 나타났다. 이 곳이 현대중공업의 알두르(Al Dur) 발전ㆍ담수플랜트 현장. 현대중공업은 2008년 발주처인 벨기에 수에즈사와 쿠웨이트 GIC로부터 이 공사를 따내 업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17억 달러라는 공사 대금도 컸지만, 우리 업체가 발전플랜트와 담수플랜트 공사를 동시에 맡은 것은 전례가 드물었다.
6월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이 플랜트를 박 차장의 안내에 따라 둘러봤다. 먼저 향한 곳은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어마어마한 크기의 기둥들과 복잡한 구조물들이 시야를 압도했다. 이 발전소는 202㎿짜리 가스터빈 4기, 272㎿짜리 스팀터빈 2기를 보유해 총 발전용량이 1,245㎿에 이른다. 바레인 전체의 전기사용량이 2,600㎿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용량이다. 이 전기는 인근에 설립될 예정인 산업단지에서 상당량을 사용하게 되며 남은 전력은 인근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에도 수출될 예정이다. 알두르 현장에서 특히 의미가 큰 것이 바로 이 발전소다. 박 차장은 "우리나라 업체들은 오랫동안 해외 발전소 건설 분야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며 "이 공사는 우리 업계 입장에서는 기념비적인 공사"라고 말했다.
곧이어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해수담수화플랜트 구역으로 향했다. 눈길을 끈 것은 바다와 연결돼 있는 4개의 거대한 파이프들이었다. 지름이 100인치에 달하는 이 파이프들은 심해에서 바닷물을 퍼 올려 플랜트로 끌고 오는 역할을 한다. 이 바닷물은 1차 정수 과정을 거치면서 소금기가 모두 빠진다. 하지만 100% 증류수는 사람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2차 공정을 통해 석회석 등이 일부 첨가돼 음용수로 거듭나게 된다. 공장 곳곳에는 거대한 물 저장소와 물이 흘러 들어가는 통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 플랜트에서는 이 같은 공정을 통해 하루 10만톤 이상의 바닷물이 민물로 바뀌는 '현대판 기적'이 매일 연출된다.
견학을 마친 뒤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날의 메뉴는 수제비와 닭다리튀김. 김치와 양파, 단무지가 곁들여졌다. 한국인 근로자들은 거의 매일 이곳에서 세 끼를 해결한다. 이들에게는 가족이 없다. 현재 이 곳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58명 중 57명이 교육과 주거환경 등 문제 때문에 단신으로 이 곳에 부임했다.
외로움은 이들이 부딪히는 여러 어려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바레인은 한 여름이 되면 기온이 50도를 넘어선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인도나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을 지휘해 사고 없이 공사를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외국인 노동자는 현재 2,000여명이며 공사가 한창일 때는 6,000여명에 이르렀다. 납기일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하루에 52만 달러씩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납기 준수에 대한 압박도 크다.
하지만 이들은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묵묵히 일에 몰두했고 결국 무사히 플랜트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장소장인 이규식 상무는 우리나라 플랜트 산업이 각광받는 이유로 "플랜트 산업에는 목표가 주어지면 달성하고 말겠다는 근성과 열정, 의지가 필요한데 한국인에게 이 같은 기질이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발전기와 변압기를 현장으로 수송할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수 백톤이 넘는 중량과 크기 때문에 육로 수송이 불가능해지자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은 공사현장에 간이 부두를 만드는 '깜짝 아이디어'를 통해 난관을 정면 돌파했다. 해양 파이프 부설 시 물과 흙을 퍼낸 뒤 공사를 했는데 이 때 퍼낸 흙으로 접안시설을 만든 것. 이 시설을 통해 발전기 등이 해양 수송되는 장면을 지켜본 발주처 관계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 상무는 "난관을 극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 느끼는 성취감은 대단히 크다"며 "이 같은 성취감이 고된 해외 생활을 이겨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알두르(바레인)=박진석 ikpark@hk.co.kr
■ 해외플랜트 올해도 수주 700억 달러 예상
지난해 우리나라 플랜트 업계는 전년 대비 39.3% 증가한 645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수주액을 기록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금융위기 이후 뜸해진 대형 플랜트 공사 발주가 본격적으로 재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들어 고유가와 중동지역 민주화 시위 사태로 이 같은 추세가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불안요인에는 호재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먼저 고유가는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되지만 그 동안 미뤄져 온 대형 플랜트 사업이 다시 발주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요인이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우디의 아람코는 발주 예정이던 얀부 정유공장을 연기했고, 쿠웨이트 국영 석유회사도 정유 공장 최종 계약 체결을 미룬 바 있다. 유가가 떨어져 사업성이 낮아진 것이 가장 큰 배경이다. 그러나 유가가 다시 100달러선을 돌파하며 수익성은 물론 자금력이 풍부해진 중동 국가들은 다시 발주에 나설 가능성은 높아졌다.
최근 민주화 시위도 악재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의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은 최근 왕정 붕괴 등을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중동판 마셜플랜'을 논의 중인데 이는 대규모 플랜트 발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SK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21억 달러 규모의 아라비아의 와싯 가스전 플랜트 공사를 공동 수주하고, 삼성엔지니어링이 27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샤이바 NGL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올 들어서도 대형 수주가 잇따르고 있다.
올 1분기 우리 업계의 해외플랜트 수주 실적도 124억 달러로 집계되는 등 통계수치에서도 호조세가 확인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 수주 목표인 700억 달러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진석기자 ikpark@hk.co.kr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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