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PS에도 없는 오지… "태양광 덕에 하루 3시간은 불켜고 살죠"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 했다. 산 속에 폭 파묻힌 강원 화천군 노동리 1250번지 일대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유선전화도 연결이 안됐다. 차량 위성항법장치(GPS)에 주소를 입력했을 땐 화면에 흰 바탕만 이어졌다. 군이 진지로 쓰는 공터를 지나 꾸불꾸불 산길을 올라야만 갈 수 있는 세 집, 전기조차 없는 마을이다.
논농사 밭농사와 소규모 축산, 양봉까지 하면서 살아가는 이곳 두메산골 주민들은 2년 전만해도 해 떨어지면 자고, 라디오 TV는 구경도 못했다. 하지만 15일 찾았을 땐 "밤에 불 밑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일정시간 냉장고를 가동할 수 있으며" "세탁기로 탈수도 하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이런 상전벽해를 가능케 한 건 바로 지붕 위와 앞 마당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였다. 2009년 시민단체 '에너지나눔과평화'가 설치해준 1~2kW용량의 발전기 덕에 소량이지만 요긴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에 사는 한 주민은 "수가 워낙 적으니 전기를 놓아주려는 정치인도 없고, 개인이 한전에 전기를 요청하면 수십억원이 들기 때문에 엄두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이면 태양광발전기 전지가 얼어버려 깜깜한 밤을 맞아야 한다. 그래도 그는 "발전기가 생긴 뒤 오후 6시부터 약 3시간동안 전등을 켜고 생활하게 됐다"고 웃었다.
기술이 첨단을 달린다지만 여전히 전등 하나 켜지 못하는 집들이 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전국의 425가구(2010년 8월 기준)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 한전은 도서 10가구, 벽지 3가구 이상이 돼야 전기공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강원 산간지역과 충남, 전남 등지의 섬에 전기 미공급 가구가 특히 몰려있다.
해와 바람이 없는 곳은 없기에 신재생에너지가 한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곳들인 셈이다. 하지만 에너지나눔과평화는 이 세 가구를 끝으로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후원 기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빈곤 가정의 에너지 소외 문제다. 지난해 진보신당 녹색위원회가 서울시 4개 자치구의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을 조사한 결과 난방중단을 경험한 가구가 7.04%나 됐다.
난방비도 제대로 대기 힘든 저소득층에게 신재생에너지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만 에너지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직간접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에너지나눔과평화는 약 1,100kW 용량의 민간 태양광발전소에서 얻은 수익으로 빈곤 가정에 단열공사를 무료로 해주거나 전기요금을 지원한다.
예비사회적기업 '에너지팜'은 태양광 추적식 가로등과 소형 풍력발전기 등을 국산화해 얻은 이윤으로 제3세계에 태양열 조리기 등 대안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에너지나눔과평화 김태호 사무처장은 "공공시설들이 태양광발전기를 도입해서 얻는 수익을 빈곤층에 환원하는 것도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지원을 50% 받는 태양광발전기의 경우 부담해야 하는 돈은 700만~1,000만원(용량 3kW 기준). 정부지원을 확대하고 높은 설비단가만 해결할 수 있다면 신재생에너지를 저소득층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에너지팜 김대규 대표는 "지금처럼 값비싼 설비를 외국에서 들여오는 대신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개발한 기기를 적정한 가격에 보급한다면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평등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천=김혜경기자 thanks@hk.co.kr
■ "친환경 펠릿보일러, 고장 잦고 열효율 낮아"
사용하고 남은 목재를 분쇄하고 압축해서 만든 나무 펠릿(Pellet).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름의 절반인데다 재도 적게 나오는 대표적 신재생에너지원이다. 가격까지 기름보다 저렴해 정부는 2년 전부터 농가에 펠릿으로 가동되는 보일러 보급을 적극 지원해왔다.
그러나 정작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신뢰가 별로 높지 않다. 펠릿 보일러를 보급하는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재단'에 따르면 사업을 진행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반품비율이 10~15%가량 된다. 연탄보다 비싸고 열효율도 낮기 때문에 무료로 설치해준 저소득 가정의 반품이 많다고 한다. 도와주려다 도리어 번거롭게만 한 꼴이다.
업계는 펠릿 사업이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 "산림청 등이 보일러기술에 대한 인증 등 준비 없이 주택에 펠릿 보일러를 보급했다"는 것. 소비자들은 잦은 고장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펠릿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는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은 "설치한 지 한 달동안 툭하면 고장 나서 아직 제대로 가동도 못해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함께일하는재단 관계자는 "아직도 연탄이나 나무를 때는 강원도 산골에선 비용이 높은 펠릿을 선호하지 않고 반대로 비싼 도시가스와 기름을 쓰는 도시에서는 펠릿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에너지도 개선할 점이 많다. 고장이 잦고 수리가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건 공통적이다. 특히 주로 냉난방에 이용하는 지열에너지는 별도의 전기에너지가 필요하고 전기소모량도 어마어마하다. 지열을 사용하는 전북 부안군 화정마을의 한 집에서는 전기 소비량이 일반 가구의 10배 가까이 되는 2,500~3,000kWh였던 적도 있었다.
그나마 널리 보급된 태양광의 핵심부품인 전류변환장치(인버터)는 일정기간마다 교체하는데다 교체비용도 100만원 이상이다. 가정에 주로 보급되는 3kW급 외 다른 인버터 가격은 두세 배로 껑충 뛰기도 한다. 또 소규모 풍력은 발전량이 미미하고 소음이 크다는 점, 태양열은 겨울철 동파가 잦고 열효율이 낮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녹색연합 이유진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은 "중국의 황명그룹은 태양열온수기를 보급할 때 판매ㆍ수리망부터 확보했다"며 "사용자들의 의견 수렴과 기술개발을 함께 진행해 시행착오 기간을 줄여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 인터뷰/ 건축가 주대관씨
"사회경제적 약자가 곧 에너지 약자입니다. 복지에 신재생에너지까지 결합했더니 웃음꽃이 피네요."
건축가 주대관(52)씨. 그가 대표로 있는 도시문화연구소는 지역사회의 주거복지 대안을 모색하는 비영리 건축단체다. 10년간 이 문제에 매달려온 그는 지난해 마침내 희망적인 모델을 찾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층에 입주비 없이 새 집을 제공하는, 이른바 농촌형 임대주택이다. 강원 인제군에 위치한 이 주택에 사는 노인들은 군청에서 매달 받는 주거대책지원비로 월세를 내고, 기초생활수급비는 온전히 생활비로 쓴다.
그가 농촌형 임대주택을 설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단열이었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근본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태양열로 온수를, 지열로 난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빈곤 계층에게 전기요금은 그나마 감당할만하지만 난방에 드는 기름값은 부담스러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 결과 33㎡ 규모의 집에서 한달 전기요금은 3만원가량 줄었고, 난방비는 일반 가정의 3분의 1 수준이 됐다. 주거 환경이 개선되자 노인들이 병원에 가는 빈도도 적어졌다. 그랬더니 연락이 뜸했던 자손들이 다시 고향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씨는 "가난할 수록 열악한 집에 살 거고, 단열이 잘 안되니 비용은 많이 들고 건강은 더 나빠진다"며 "에너지 빈곤이 건강 등 노인복지와 밀접하게 연관이 돼 있다"고 했다.
주씨는 앞으로 농촌 면소재지마다 작은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꿈꾼다. 실제로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 소속 공무원들이 이곳을 방문, 정책모델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올 7월에는 인제군 남면에 같은 방식의 주택이 또 생긴다.
"농촌형 임대주택이 공공사업이 되면, 재개발 갈등을 극복하는 도시형 모델을 개발할거예요. 이 때도 고단열에 신재생에너지는 빠질 수 없죠."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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