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식도 시류를 타는 것 같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의 공동체의식 속엔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와 긍지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 변화가 일어났다. 외국인 인력의 유입이 크게 늘고, 그들을 흡수해야 하는 산업계의 이해가 맞물렸다. 최소한 외국인 이민을 우리 사회에 수용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 뿌리까지 변한 건 아니겠지만, 번영과 함께 민족의식에도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가 형성된 셈이다. 2007년부턴 교과서에서도 단일민족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사라졌다.
■ 반면 유럽에선 요즘 구태의연한 민족의식이 되살아 나는 분위기다. 경제 위기와 사회복지 축소, 유럽연합(EU) 등에 대한 각국 국민들의 반감이 외국인 이민자들에게 분출되면서 배타적 민족의식이 득세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나치 옹호론으로 악명을 떨친 장 마리 르팽 국민전선 당수가 2012년 대선 여론조사에서 2, 3위권을 달릴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핀란드 극우정당인 '진짜 핀란드인(TF)'이 최근 총선에서 이전의 5배 득표율을 올리며 돌풍을 일으키는 등 반(反)이민, 반(反)다문화 구호가 영국과 스위스, 스웨덴과 네덜란드 등의 정치판에 횡행하고 있다.
■ 엇갈린 흐름은 세계화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교통과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국경과 시장의 경계가 사라지고, 각 분야에 글로벌시스템(Globalsystem)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국민국가가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정치학에선 이미 국민국가의 소멸까지 예견하면서, 새로운 정치ㆍ경제ㆍ사회적 거버넌스(governance)에 관한 연구가 보편화했을 정도다. EU로 흡수된 유럽 각국에서 국민국가의 약화에 대한 반동이 배타적 민족의식으로 나타났다면, 우리나라에선 세계화에 대한 적극적 분위기가 민족의식의 유연성으로 발현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지금까지 군 입대자와 장교 임관자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로 시작되는 선서를 해왔다. 하지만 26일부터는 '민족'이라는 단어를 '국민'으로 바꾼다고 한다. 2013년까지 징병검사 대상인 16~18세 다문화가정 출신 남성이 4,000여명에 이르게 되는 다문화사회 추세를 감안한 조치란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가 워낙 근본적이다 보니 국군의 존립기반인 국민국가 체제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서 문안의 변화가 새삼 세계체제의 격동을 환기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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