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지만, 결국 우리의 롤모델은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돼야 한다. 9명의 연방 대법관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재판을 1년 동안 80~100여건만 처리한다. 여기서 최고 재판부에 대한 권위와 믿음이 형성된다."
한국의 마지막 '주미 사법협력관'을 지낸 강한승 서울고법 판사는 21일 최근 불거진 사법개혁 논란에 대해 간단하고 명확하게 해법을 제시했다. 주미 사법협력관은 워싱턴의 한국대사관에 파견돼 미 사법부와의 협력을 논의하는 외교관 신분으로, 지난해 2월 강 판사를 끝으로 자리가 없어졌다.
"우리 대법원은 소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수많은 상고사건에 묶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상고를 무제한으로 허용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상고허가제를 폐지하면서 대법관의 업무를 가중시켰습니다."
강 판사는 한국 대법원이 참고해야 할 롤모델로 미 연방 대법원을 제시했다. 그는 "최고 법원의 존재 이유는 중요한 법률적 판단에 지표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한국의 사법제도도 궁극적으로 미국 연방 대법원의 구조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 연방 대법원은 9명 중 4명 이상 상고를 인정하지 않으면 재판이 열리지 않으며, 상고가 결정된 모든 재판은 전원합의체 형식으로 진행된다. 연방 대법원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변호사들에게 충분한 구술 변론 기회를 제공하고, 변론의 모든 과정은 사회적 이슈로 재생산된다.
강 판사는 국제 사법협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당장의 성과가 없더라도 국제 사법공조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며 "국제적으로 구축된 법조 네트워크와 다양한 현장 자료들은 국내 사법 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강 판사는 미국 근무 중 자신을 끝으로 주미 협력관 자리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심경은 착잡했다고 전했다. 그는 "떠날 때 많은 미국 법관이 후임을 물어왔다"며 "후임자가 없다는 말에 당황한 미 판사들만큼 나 역시도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인권 변호사 1세대로 불리던 강신옥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기도 한 미국 법원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미국 법원을 말하다> 라는 책을 펴냈다.
정재호 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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