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나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하면 통상의 살인죄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존속살해죄의 폐지 여부를 두고 법조계가 뜨겁다. 존속살해죄 조항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오다 최근 법무부가 공식 주제로 논의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 형사법개정특위는 지난 18일 형법의 존속살해죄 조항을 없애는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형사법개정특위는 법학자와 법조계 인사 24명으로 구성된 법무장관 자문기구로 형법을 시대 흐름에 맞게 개정하기 위해 2007년 출범했다. 위원 다수는 이날 “헌법의 평등권 조항을 고려할 때 존속살해죄는 ‘출생에 따른 차별’이 될 수 있다”며 폐지를 주장했지만, 일부 위원은 “패륜 범죄에 대한 처벌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며 폐지를 반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존속살해죄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선 유기징역 상한을 높인 개정 형법이 지난해 10월 시행됨에 따라 살인죄가 사형, 무기 또는 3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이 가능해 해당 조항이 폐지된다고 해서 형량이 무조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영국 등 대다수 국가가 존속살인죄 조항을 두기보다 죄질에 따라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직 판사들도 대체로 존속살해죄 폐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존속살해죄는 구시대의 잔재와 같다. 존속살인죄 형량이 7년 이상으로 규정돼 판사가 양형으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기 힘들다”며 법 조항 폐지를 주장했다. 집행유예 선고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도 법 조항에 발목이 잡힌다는 설명이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도 “부모의 가혹한 학대에 따른 살해 등 억울한 상황에서도 정상 참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과감히 폐지해 법원 재량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존속살해죄 유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충효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교 전통을 중시하는 성균관은 존속살해죄 폐지론이 확정될 경우 문제 삼겠다는 입장이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존속살해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회질서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법률적 측면에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부 법조인은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 이헌 변호사는 “존속살해죄 폐지를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기 전에 헌법적 판단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의 명확한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법무부 주도로 밀어붙이면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존속살해죄 조항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부터 존재했지만 경직된 규정 때문에 위헌 논란이 계속 제기됐다.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이전에는 사형과 무기징역으로만 처벌토록 했던 조항이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선고가 가능하도록 하향 조정됐지만 논란은 식지 않았다.
법무부는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 안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