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조원(2월말 기준)의 적립금을 등에 업은 국민연금이 증시에서 주요 금융지주와 대형은행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면서, 은행권의 최대 권력자로 부상하고 있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세 곳에서는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 곳에서는 최대 주주의 자리에 오른 것.
얼마나ㆍ왜 늘렸나
하나금융지주의 지분을 7.55%(1,830만주)나 보유하던 골드만삭스는 21일 아침 개장 전 700만주를 해외 장기펀드에 매각했다. 골드만삭스 지분은 4.67%로 감소했고, 국민연금이 하나금융 최대주주가 됐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5% 정도이던 지분율을 계속 늘려 이날 현재 7~8%의 지분을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됐다.
국민연금이 금융지주사 최대주주가 된 것은 KB금융지주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신한금융지주에서는 BNP파리바 지분에 근접한 2대주주다. 외환은행 지분을 4% 가까이 보유 중이며 BS금융지주(부산은행)에 대한 지분율도 5%를 넘는다.
증권가에서는 국민연금의 안정적 투자 성향이 은행의 특성과 맞아 떨어지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우 삼성증권 선임연구원은 "은행주는 상승 여력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국민연금 같은 장기투자자가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1월 금융위원회가 국민연금을 산업자본 아닌 금융자본으로 분류하면서 투자가능 비율을 늘려준 것도 은행주 보유를 용이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금융위는 '지분이 4%를 넘거나 최대주주가 되면 당국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은행법 규제가 국민연금과 무관하다는 해석을 내렸다.
일반 업종에 대한 투자 확대 속도도 무섭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2009년 9월말에는 71곳이었으나, 지난해 9월말 139개로 급증했다. 중소형 빌딩 매입에도 적극 나서, 2015년까지 실물투자에 30조원을 더 투입할 계획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할까
지금까지 경영권 다툼 등 민감한 문제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은 국민연금의 특성상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책임 문제나 지배구조 등 일부 의제에서는 국민연금이 은행권의 현안에 대해 과거와 달리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연구위원은 "주주총회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지 않았던 국민연금이 조만간 의결권 대행기관을 활용하게 되면 찬성ㆍ반대가 분명해져 반대 의결권 행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재무구조 외에 사회ㆍ환경ㆍ지배구조 등을 고려하도록 하는 권고 기준인 유엔 책임투자원칙(UNPRI)에 국민연금이 가입한 것도 고려할 요소"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늘어난 보유 지분을 무기로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금융권에 대한 관치의 지렛대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은행권에 특정 정책이나 의사를 강제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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