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혁명, 정치가 현대음악 속에서 만난다. 국립오페라단이 20세기 프랑스 작곡가 프란시스 풀랑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를 아시아 초연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공포정치 당시 척결돼야 할 구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가톨릭 교회의 마지노선이었던 수녀회는 혁명 정부에 의해 처단된다. 귀족과 함께 구체제를 상징했던 수녀들의 절망과 분노, 몰락을 현대음악은 어떻게 볼까? 그들은 결국 단두대에 오르고, 쇳소리에 이어 무거운 칼날이 부딪히는 둔탁한 음과 함께 암흑 너머로 사라진다. 끝까지 미사곡(Salve Regina)을 부르는 그들에게 시간의 낫(time’s scythe)은 가차없다. 무대는 혁명 정부의 1792년 8월칙령에 다른 수녀원 폐쇄 조치 사건이 배경이다.
1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프랑스 관계자들과 함께 가졌던 작품발표회에서 연출가 스타니슬라브 노르디는 “인간 영혼의 파노라마를 그린 이 작품의 도전에 응한 한국의 오페라 역량에 놀랐다”며 2주일째 연습에 임하고 있는 소감을 밝혔다. 지휘자 다니엘 카프카는 “이 오페라는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비견되는 작품”이라며 “1957년 라스칼라 초연 당시의 극찬을 다시 서울에서 재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번의 리허설만으로 요점을 정확히 표현해 내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능력에 놀랐다”고도 했다.
지난해 ‘프랑스 오페라 워크숍’ 등으로 한국 팬과 낯을 익힌 음악 코치 앙투완 팔록은 “1월 내한, 프랑스어의 딕션을 중점적으로 지도하고 있다”며 “성악가의 성장, 국립오페라단의 도전적 모습 등 최근 한국 오페라의 발전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치의 감정이입도 허용하지 않는 풀랑의 선율은 냉혹하리만치 사실(史實)을 추구한다. 군대의 진입에 놀란 수녀가 예수상을 떨어뜨리는 대목이 상징적이다. 국민에게 수녀들은 ‘공화국의 적’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이 옷을 벗기고 머리마저 깎여 손바닥만한 공간에 격리된 장면은 역사를 내건 정치가 자행하는 폭력을 압도적으로 상징한다. 이때 풀랑의 선율은 마치 공포 영화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애초부터 무대는 영성(靈性)에 관심 없다. 무대 전반부, 임종 직전 병마의 고통에 울부짖는 노수녀는 절망만이 가득하다. 그가 외던 구원이란 헛소리였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것은 젊은 수녀의 말대로 “신의 실수”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순교를 택한 수녀들의 결정에 젊은 수녀 블랑슈는 혼자 도망간다. 나중에 노수녀 품에 안겨 “두려움에 내몰려 수치 속에 산다”고 그는 노래하지만 풀랑은 그 대목의 선율을 귀곡성 뺨치는 불협화의 극으로 그린다.
콜로라투라 아닉 마시는 이 무대가 선사하는 최대의 선물이다. 그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화상인 문화예술공로훈장 기사장을 따낸 최고의 소프라노. 2008년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로 영국 최고의 공연 예술상인 로렌스올리비에상을 탄 프랑스 연출가 스타니슬라스의 무대 미술이 가세한다. 임세경 정수연씨 등 출연. 5월 5~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_5363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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