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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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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가시

입력
2011.04.19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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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손바닥선인장엔

골고다 예수보다 훨씬 많은

바늘 같은 못들이 손에 박혀 있다

떨어져버리는 잎새들의 환란을

저처럼 작고 뾰족하게 벼려놓았다

잎새가 드리우던 그늘 대신

겨우 손바닥 위에

바늘 그림자 촘촘히 떠놓는다

바늘로 햇살을 떠먹는 가시 숟가락들,

사막의 식사는, 햇빛에 인색해야 한다

바늘 몇 쌈을 뒤집어쓴 손바닥 안에

바늘 허리는 뿌리처럼 숨겨두었다

햇살마저 그림자 바늘을 토한다

어떤 손길도 잘 닿지 않아

스치는 그림자마저 손잡아주지 않는구나

스스로 감옥에 갇힌 저 늙은 초록들,

바늘을 한 움큼 삼킨 사내의 목소리나

들어보고 싶구나

아니, 무수한 바늘을 품고도

仙人의 掌은 스스로

손끝 하나 긁히거나 찔리는 법이 없다

그림자조차 남기는 법 없는

궁금한 바람조차 푸른 손뼉 소리나 듣자고

신선의 손목을 건듯 흔들고 지나간다

● 선인장을 한자로 仙人掌(선인의 손바닥)이라 쓰는군요. 선도를 닦은 선인의 손바닥은 범인의 손바닥과 무엇이 다른가요. 제 손에 가시를 박아 그림자와도 쉽게 악수 나누지 않네요. 무수한 바늘을 품고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네요. 지는 잎새들의 환란을 가시로 벼리며 마음 닦아서일까요.

사람들은, 가시눈을 뜨기도 하고, 가시 돋친 말을 하기도 하며, 가시밭길 인생을 살아가니, 선인장과 닮은 데가 있네요. 따지고 보면 선인장이란 이름 못지않게 사람들 이름도 멋지지요. 대부분 사람들의 이름은 거창하고 건강하고 아름답잖아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이름만큼만 살아간다면 세상이 훨씬 밝아지겠지요. 그런데 제 이름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쉽나요. 오죽했으면 명예롭게 죽겠다는 말이 다 생겼겠어요. 이름은 사람이란 집의 문패죠. 이름이 갖는 함축성은 놀라워, 이름에서는 푸른 손뼉 소리도 날 듯하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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