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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수재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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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수재들의 죽음

입력
2011.04.1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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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나 고래와 같은 해양포유류가 갑작스레 얕은 해안이나 모래밭으로 올라와 죽음을 맞는‘스트랜딩(stranding)’현상이 있다. 그 이유는 논쟁이 분분하지만, 진화론의 관점에서는 외상이나 질병으로 생존이 어렵거나 자신의 죽음으로 친족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우 자살로 추정되는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자살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판단하는 데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 인식에는 크게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1등만 인정하는 획일화 사회

우선 생물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뇌를 연구해보면 한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뇌척수액 내의 신경세포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대사물이 낮고, 세로토닌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의 효율이 떨어지는 특정 유전자형이 많다. 이는 같은 환경에서도 사람마다 스트레스와 우울감의 정도가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또한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자살률의 변화를 사회의 특성이나 변동과 관련 지어 설명했다. 그 중 아노미성(anomic) 자살은 가치부재의 사회 질서에서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괴리감이 원인이라고 했다. 도덕적 종교적 절대적 가치가 점점 희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기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생존 방식을 터득해야 하고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자신을 학대하고 절망하는 과정의 한 행태가 자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생물학적으로 자살 충동을 쉽게 느끼는 유전적 요인이 잠재한 경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우울 불안과 같은 증상이 쉽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증상들이 사회적 고립을 악화시켜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떨어뜨린다. 현실을 지나치게 절망적으로 보게 하는 등 심리, 인지적인 위험을 연쇄적으로 증가시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자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실감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추구하던 자존심 사랑 건강 권력 직업 명예 등의 상실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인 우울 증상을 일으키고, 자신이 동일시한 대상에 대한 무의식적 공격의 형태로 자살을 선택한다고 설명한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의 잇단 자살 소식은 정신과 의사에게 참담한 심정을 안겨준다. 한국은 하루 평균 42.2명, 34분마다 1명 꼴로 자살하는 세계 1위 ‘자살공화국’이 되었다. 무엇이 우리 2ㆍ30대 자살률이 10년 사이 각각 194%, 182% 증가하게 하였는가. 1등만을 인정하는 획일화한 사회에서 자란 청년들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쉽게 희망을 잃고, 타인과의 소통을 스스로 단절시켜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잃는 것은 아닐까.

사회 환경 변화와 예방 노력을

인간은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죽음을 경험하고, 사업 실패를 겪거나, 시험 성적이 남보다 못한 결과 등을 피할 수 없다.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 우울이나 자살의 원인이 된다고 하나, 인간은 이러한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개인의 다양성과 장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조성과 아울러 특정 개인의 취약성을 빨리 인지하고 적절한 도움을 주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의 비극들이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심리적, 생물학적 다양성을 고려한 자살예방 시스템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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