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제프리 무타이(30ㆍ케냐)가 19일(한국시간) 새벽에 열린 제115회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2시간 3분2초로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2시간3분2초에 골인하려면 매 100m를 17초49로 주파해야 한다.
종전 세계 최고기록은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8ㆍ에티오피아)가 200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3분59초. 무타이는 게브르셀라시에의 기록을 3년 만에 무려 57초나 앞당긴 '폭풍의 레이스'를 선보인 것이다. 이로써 1999년 할리드 하누치(미국)에 의해 2시간 5분대로 진입한 마라톤 속도전이 12년 만에 2분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하지만 이 기록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비공인 기록으로만 남게 됐다. 왜냐하면 IAAF가 2004년 8월 개정한 규약집에 '마라톤 출발선과 골인지점까지의 직선거리가 전체코스의 50%(21.075km)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식 대한육상연맹 경기팀장은 "세계 5대 메이저마라톤대회(런던, 보스턴, 베를린, 시카고, 뉴욕)중 보스턴 마라톤만이 직선거리가 전체코스의 91%를 넘어 IAAF측으로부터 기록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2위로 골인한 케냐의 모제스 모솝(26)도 마라톤 데뷔전인 이번 대회에서 역시 세계 최고기록인 2시간 3분6초를 찍었다.
■ 왜 국제육상연맹 비공인 기록인가
쟁점은 코스와 경사오차 두 가지다. 보스턴 마라톤 코스가 거의 대부분 직선으로 이뤄졌다는 점과 경사오차가 IAAF의 규정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1897년 출발총성을 올려 올해로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은 올림픽과 함께 세계최고의 대회로 정평이 나 있다. 마라톤 코스 역시 1회 대회부터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채 역사성을 유지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2004년 개정된 IAAF의 규정 때문에 보스턴 마라톤 코스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보스턴 마라톤 조직위측과 IAAF간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경사도 역시 IAAF측은 매 1km당 1m의 오차를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풀코스까지 최대오차 허용범위는 42.195m다. 하지만 보스턴 코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해 143m까지 경사가 차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30km 후반지점은 '심장파열언덕'(Heart break hill)으로 불릴 만큼 악명 높은 오르막이 선수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황영조 마라톤 기술위원장겸 국가대표 감독은 "보스턴 마라톤은 마라토너들 사이에 꿈의 무대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도 IAAF측이 권위를 내세워 최고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오만한 발상이다. 실제 IAAF 홈페이지에서는 보스턴마라톤 기록을 공식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비공인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이라고 말했다.
■ 제프리 무타이는/ 정상에 항상 반 발짝 늦는 '단골 우승 후보'
무타이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2008년 마라톤에 입문한 그는 2시간7분 50초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2009년 대구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10분45초로 8위에 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무타이는 이듬해 4월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 4분54초로 2위에 오르면서 일약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도 2시간 5분10초로 2위로 골인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그의 마라톤 이력은 이처럼 우승권에 '반 발'씩 못 미쳐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보스턴대회에서 초속 6m~8m로 분 뒷바람 덕분에 '대형사고'를 쳤다. 무타이는 골인 후 "코치를 두지 않고 혼자서 대회준비를 해왔다"며 "뒷바람이 레이스에 도움이 됐지만 오직 모솝을 따돌리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 보스턴 마라톤은/ 30km 지점 '심장 파열 언덕'…저조한 기록 유명
보스턴마라톤대회는 막판 30km지점에서 급격한 오르막 때문에 메이저 마라톤대회중 '넘버 원'에 꼽히지만 기록이 저조한 대회로 유명하다. 런던, 베를린마라톤대회가 평탄한 코스로 세계기록의 산실로 유명한 반면 보스턴 챔피언은 2시간 7분~9분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로버트 키프로노 체루이요트(22ㆍ케냐)가 2시간5분52초로 골인하면서 급가속의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은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47년 이 대회에서 서윤복이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 1위로 골인한 데 이어 1950년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2,3위를 휩쓸었고 이봉주가 2001년 다시 한번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해 3명의 챔피언을 배출했다.
한편 육상 전문가들은 마라톤 인간한계 기록을 1시간 59분대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기진 계명대 교수는 "1시간 59분은 현 마라톤 기록경신 추세를 따져볼 때 충분히 가능한 기록"이라며 "2013년까지 2시간2분대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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