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처리해법으로 '민간 배드뱅크'를 꺼내 들었다. 금융회사에 PF 대출이 분산돼 있어 부실 사업장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PF 부실 대출을 한 곳에 몰아넣어 신속한 정상화를 모색하겠다는 것.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5, 6월 대란설' 등 흉흉한 시장 분위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민간 배드뱅크 구상은
작년 말 현재 금융권 PF 대출 잔액은 66조5,000억원. 이중 부실채권 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하는 9조7,414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부실채권이 여러 금융회사에 쪼개져 있다 보니, 부실사업장 처리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PF대출 만기 연장을 두고 금융회사들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공동 시공사인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 모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따라 각 금융회사에 분산돼 있는 부실 채권을 한 곳에 모아 처리한다는 것이 민간 배드뱅크 구상의 골자. 은행들이 보유 PF규모에 따라 10~15%씩 지분을 출자해 특수목적회사(SPC)인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이 배드뱅크를 통해 각 은행의 PF 부실채권을 시가보다 싸게 매입하는 것이 골자다.
초기 자본금 규모는 아직 유동적. 하지만 일반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이미 설립된 민간 배드뱅크 '유암코'의 출자금(5,000억원)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배드뱅크가 출자금을 토대로 채권발행이나 차입을 할 수 있고, 또 PF 부실대출 정상화에 따른 수익금이 회수가 되기 때문에 초기자본이 대단히 많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배드뱅크에 PF 부실대출이 모이면, 시행ㆍ시공사를 교체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등 방식으로 부실사업장을 신속히 정상화한다는 방침. 정상화된 PF를 되팔아 남은 수익은 출자은행에 배분되고 배드뱅크는 청산절차를 밟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장 PF 부실대출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원 포인트 릴리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
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긴 힘들 전망. 당장 금융당국 내에서도 시각차가 느껴진다. 금감원이 배드뱅크에 매우 적극적인 반면, 금융위원회는 "좀 더 두고 보자"는 태도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PF 종합대책의 하나로 배드뱅크 설립을 검토하는 것은 맞지만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며 "누가 얼마나 돈을 낼 지가 최대 관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출자금 분담을 두고 은행권에선 적지 않은 거부감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작 위기의 진원지인 저축은행 PF 부실은 어떻게 처리할지도 숙제다. 은행권만 출자한 배드뱅크에서 저축은행 부실까지 매입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 더구나 저축은행들로선 돈을 내고 배드뱅크에 들어갈 여력은 없고, 그렇다고 부실 채권을 배드뱅크에 대폭 할인해 넘길 경우 당장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쉽게 팔 수도 없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대책은 은행 PF대책일 뿐, 저축은행 PF대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 PF부실 문제는 다른 방식의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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