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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아트로 게임중독 극복한 김대진씨/ "괴물 잡던 손맛, 작품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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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아트로 게임중독 극복한 김대진씨/ "괴물 잡던 손맛, 작품서 느낍니다"

입력
2011.04.1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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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오토바이 자동차 풍차…. 금방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들이 김대진(42)씨 집의 3평 남짓한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높이 2.7m의 거대한 로봇은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이 구부러질 정도로 정교했고, 오토바이는 타이어 문양까지 섬세하게 살아있다.

고가의 조립식 장난감과 견줘도 손색없는 작품들은 버려진 종이상자로 만들어졌다. 빈 병이나 폐지 등 폐품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 정크아트(Junk Art)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경남 마산시 한 병원의 방사선과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인 김씨가 정크아트에 빠져든 사연은 남다르다. 그는 "게임중독의 늪에서 건져준 소중한 존재"라고 했다.

김씨는 컴퓨터가 가정에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6년께부터 컴퓨터게임을 했다. 본체에 CD를 넣어 하던 시절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 온라인게임이 나올 때까지, 게임 속 가상공간의 판타지와 괴물을 검으로 벨 때의 '손 맛'에 빠져 살았다. 11년 전 지인 소개로 부인 심수영(37)씨를 처음 만난 날에도 심씨를 PC방에 데려가 게임 실력을 뽐냈을 정도.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 없었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주말 당직 근무 때면 50시간 넘게 게임을 했다. '득템'(게임에서 아이템을 얻음)하는 날에는 자상한 남편이었지만 게임이 풀리지 않으면 어느새 부인에게 화풀이하는 다혈질 남편으로 변했다. 아빠의 영향으로 아들 준휘(9)가 세 살 때부터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에 빠졌을 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배우는 것도 괜찮다"고 그냥 뒀다.

김씨를 바꾼 건 X-레이 필름을 담았던 종이상자였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 방사선과에서는 필름을 담았던 종이상자가 하루에도 몇 개씩 폐품으로 나왔고, 2004년 아내가 일하는 유아원에 그 상자로 모빌을 만들면서 정크아트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엔 정크아트가 뭔지도 몰랐어요. 주변에 널린 게 종이상자라 그걸로 풍차 자동차 로봇 등을 만들다가 푹 빠졌어요." 자연스레 게임과 멀어지더니 이제는 딱 끊었다.

지난 7년간 그가 만든 작품은 100여 점. 높이 2.7m의 로봇을 만드는 데 5년이 걸렸고, 길이 1m 가량의 오토바이는 2년이 걸렸다. 종이 위에 아크릴물감을 칠한 뒤 광택을 내는 도료인 바니시를 바른 오토바이, 자동차, 소형 로봇 등은 원재료가 종이라는 걸 눈치채기 힘들 만큼 완성도가 높다.

놀라운 건 그가 도면도 없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예술과 관련된 경력이라곤 고등학교 때 미대 진학을 꿈꾸며 2년간 학원에서 서양화를 했던 게 전부. 그나마도 미대 진학에 실패한 후로는 20년 가까이 병원에서만 일해왔다. 그는 "문득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케치해뒀다가 작품으로 만든다"며 "오랫동안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 준비에 바쁘다. 컴퓨터게임보다 더 재미있어 저절로 게임을 끊게 해준 정크아트로 게임중독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하기로 한 것이다. 2009년 다니는 교회에서 1년간 6~8세 아이들 100여명을 가르쳤을 때 호응이 좋아 줄곧 계획해 오던 일이다. 마침 한 주류업체에서 진행한 '꿈 지원 프로젝트'에서 지난달 1,500여명 중 최종 5명에 선발돼 2년간 1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김씨는 지원금으로 아동용과 성인용 정크아트 교재를 각각 펴내고, 올 여름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정크아트 캠프를 열 계획이다. "게임중독은 초등학교 3, 4학년 때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헤어나기 쉽지 않아요. 한때 게임에 빠졌었지만 지금은 종이상자로 집 등을 만들며 노는 아들 준휘와 제 경험을 토대로 게임중독 아이들을 잡아주고 싶어요."

마산=글ㆍ사진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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