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1930~69)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그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 스타카토로 우는 까치소리, 급한 참새소리, 내림목탁소리로 해송 쪼는 쇠딱따구리소리, 한 문장을 완성하는 산문(散文)의 제비 울음소리, 저음의 부엉이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들 풀어진 공기를 마셨기에, 나는 새를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4·19혁명. 내 전생에 일어난 역사에 피는 왜 뜨거워지는가. 당시를 체험한 사람들 맘이, 시는 물론 이 땅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성냥개비 하나에까지 미세한 양이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엄청난 간접의 영향들이 사물에서 사물로 또는 사람들 맘에서 맘으로 유전되며 내 피에도 각인되어 피가 뜨거워지는가. 역사란 그런 것인가.
가라는 껍데기는 가지 않고, 남으라는 향그러운 흙가슴은 남지 않고, 껍데기들이, 쇠붙이가 더 맹렬히 몰려오는 이 절망의 현실. 그래도 붉은 진달래 피는 4월이면, ‘저마다의/가슴/젊은 염통을/전체의 방패로 삼아/과녁(貫革)으로 내밀며/쓰러지고/쌓이면서’도 전진했다는 젊음들이 뭉클 그려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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