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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웰메이드'를 원한다고?

입력
2011.04.18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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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Well made). ‘잘 만들어진’이란 뜻의 이 영어 단어는 충무로에선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적절한 제작비를 들여 뛰어난 배우와 우수한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빚어진 대중적 수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근사한 수공예품을 연상시키는 이 단어만큼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를 단순 명쾌하게 홍보하는 말도 딱히 없다. 뭇 상업영화들이 짐짓 웰메이드인양 자신을 드러내면서 웰메이드이기를 희망하는 이유다.

최근의 국내 주류 영화들은 어떨까. 웰메이드보단 지리멸렬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마이 블랙 미니 드레스’와 ‘수상한 고객들’ 등 대부분이 실망스럽다. ‘위험한 상견례’도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지만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멀다. 요즘 상업영화는 우스꽝스럽거나 진기한 단편적 에피소드에 집착할 뿐 이야기엔 허술하다. ‘충무로가 말하는 법을 잊었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에 기대 웃음을 얻으려 하고, 연출은 독창성을 잃은지 오래다. 한국 영화를 보기 전에 지녔던 기대감이 두려움으로 바뀐지 꽤 오래다. 참신함을 지닌 신인 감독들이 눈에 띄지 않기에 절망감까지 느껴진다.

독립영화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과연 어떤 영화이길래’라는 기대감은 발견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올해 독립영화 사천왕이라는 ‘혜화, 동’ ‘파수꾼’ ‘무산일기’ 등은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은 완성도를 제각기 자랑한다. 웰메이드라는 단어는 이제 독립영화들 앞에 붙어야 할 수식어가 되었다.

독립영화의 약진은 2009년 ‘워낭소리’ ‘똥파리’ ‘낮술’의 등장으로 두드러졌다. 지난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레인보우’ ‘회오리바람’ 등을 통해 수작 퍼레이드는 이어졌다. 하나같이 신인 감독들이 일군 성과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 등을 잇는 한국 영화계의 인재들은 모두 독립영화로 몰린다” “한국 영화의 희망은 독립영화”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반면 충무로를 쥐락펴락하는 대형 투자배급사들과 주류 영화사들은 젊은 재능들을 끌어 모으지 못하고 있다. 좋은 인재를 영입해도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평도 있다. 수익성만 좇고 창의성을 외면하는 경직된 제작 시스템이 화근이 됐다.

1970년대 미국 대형 스튜디오 유니버설의 수장 시드니 셰인버그는 TV 분야에서 일하던 무명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할리우드로 이끌며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이 성공할 때만 함께 하겠지만 당신이 실패해도 난 항상 당신 곁에 있겠다.” 스필버그는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성가와도 같은 말이었다”고 회고한다.

실패를 각오한 과감한 인재 수혈 없인 충무로 영화에 웰메이드란 수식은 더 이상 붙을 수 없다. 하물며 글로벌 시장 개척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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