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사태의 해법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15일 소집된 이사회가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을 보면 카이스트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 카이스트 학생을 옥죄는 것은 지나친 경쟁이다. 한국일보 16일자에 실린 카이스트 총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의 인터뷰를 보면 카이스트는 어딜 가나 경쟁이다.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 상대가 됐기 때문에 학교가 삭막하기 짝이 없다.
학교가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바로 차등 수업료제다. 성적이 좋으면 수업료를 면제하고 나쁘면 내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의 문제는 학생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치욕과 수모를 느낄 때 얼마나 자존감이 상하고 괴로운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모욕을 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서남표 총장의 잘못도 여기에 있다. 공부를 시키겠다는 선의가 있었을지 몰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래도 카이스트가 늦게나마 차등 수업료제를 폐지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카이스트 수업료 면제 옳은가
차등 수업료제를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모든 학생에게서 수업료를 받지 않거나, 모든 학생으로부터 원칙적으로 수업료를 받는 것이다. 서남표 총장이 오기 전 카이스트는 전자의 경우였고 지금 논의도 전자로 돌아가자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묘한 시점이기는 하나 과연 전자로 돌아가는 것이 해답인지 이 기회에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카이스트 학생이 수업료를 면제받아야 할 사유가 무엇인가.
과학의 중요성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 잘하는 사람만이 공동체와 국가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든, 청소부든, 가정주부든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기여를 한다. 과학 한다는 이유로 특별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은 미래에 과학자가 될 확률이 조금 높을 뿐 아직은 과학자도 아니다.
눈을 카이스트 밖으로 한번 돌려보라. 사립대학의 한해 평균 등록금이 2000년 449만원에서 2010년 754만원으로 67.9%나 올랐다. '미친 등록금' 때문에 여대생들이 삭발을 할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반값 등록금도 물 건너 갔다. 그렇기 때문에 학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파김치가 되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그들의 눈에, 수업료를 면제받고 점심 식대까지 지원받는 카이스트 학생이 어떻게 보일까. 카이스트 학생들이 학점 경쟁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다지만, 카이스트에 가지 못한 학생들은 학점 경쟁에 한번, 등록금 마련에 또 한번 피눈물을 흘린다.
카이스트의 수업료 면제에 조건이 붙는 것도 아니다. 카이스트 졸업생들이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처럼 돈 굴리는 분야에서 요즘 두각을 나타내거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을 보면, 수업료 면제의 정당성은 더 떨어진다.
물론 우리나라가 북유럽처럼 학비를 획기적으로 감면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카이스트도 국립대 수준의 수업료를 내게 하고 공부를 잘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옳다. 여기에는 차등이 없으니 카이스트 학생들이 거부할 명분도 없다.
사회 전체 틀에서 논의할 일
원래 누군가가 특혜를 줄 때는 그에 맞는 요구를 하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다스릴 때 당근과 채찍을 함께 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남표 총장이 도입한 신자유주의적 원리에는 특정한 누군가를 특별한 존재로 치켜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 특혜를 받은 사람은 그것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학교를 무한경쟁의 살벌한 정글로 만들고도, 서남표 총장이 미적거리는 것은 특혜의 그런 속성을 잘 알기 때문인지 모른다. 제대로 한번 싸우겠다면 특혜를 먼저 버려야 한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