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등 국내 대기업이 미국에 있는 반(反)이란 단체로부터 이란시장에서 철수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해당 단체는 최근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등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도 유사한 압박을 가해 성과를 본 뒤 아시아의 대표 기업인 현대차그룹을 직접 겨냥, 모든 상거래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LG와 GS, SK이노베이션, 현대중공업, 대우인터내셔널 등 우리 기업 10여곳을 다음 리스트 목록에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미국의 비영리 압력 단체인 이란핵반대연합(UANI)의 서신에 따르면 이 단체는 현대차, 기아차에게 핵개발과 테러의 온상지인 이란과의 모든 상거래와 투자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불매운동을 펼치겠다는 암시도 담겨있다. 이 단체의 마크 왈라스 회장은 "현대차가 최근 몇 년간 미국시장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많은 미국인이 현대차와 이란의 거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이는 현대차의 이미지와 명성에 지속적인 손상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어 자동차뿐 아니라 현대로템, 현대하이스코, 현대모비스 등 다른 계열사의 대(對)이란 거래도 중단할 것을 촉구하면서 "현대로템의 경우 철로차량 생산 및 방산 제조사여서 이란의 방위산업과 연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스럽다"고 적시했다.
이 편지는 지난해 12월 16일 이 단체의 본부인 미국 뉴욕에서 발신, 서울 양재동 현대차 그룹 본사에 있는 정몽구 회장에게 전달됐다.
이에 따라 최근 현대ㆍ기아차는 이란에서의 철수를 비롯한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있다. 이란 시장보다는 올해 100만대 판매가 확실시되는 미국 시장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란 시장을 포기할 경우 연 2만대 판매 수준인 이란 뿐 아니라 연간 40만대 규모인 중동 지역으로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란과 중동은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지만 브랜드 이미지가 급상승한 미국 시장을 놓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이란 시장에서 중동 시장으로의 연쇄 파장을 우려,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미국 시민단체와 국내 민간 기업간의 문제여서 정부가 간여할 입장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신맹호 외교통상부 부대변인은 이날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에 성실하게 동참하고 있다"며 "미국 시민단체가 국내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해당 기업이 알려오지 않는 이상 사실을 파악하기 힘들고 정부가 입장을 표명하기에도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UANI는 이란,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는 유태계 보수성향의 미국 시민단체로 그 동안 GE,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이란과의 거래, 투자 중단을 요구,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또 미 의회 입법안에도 적극 간여, 지난해 7월 발효된 '포괄적 이란제재법'의 입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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