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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단체 "불매운동" 압력에 이란서 철수할 / 현대ㆍ기아차, 중동 질주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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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단체 "불매운동" 압력에 이란서 철수할 / 현대ㆍ기아차, 중동 질주 '빨간불'

입력
2011.04.1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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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가 발칵 뒤집혔다. 정몽구 회장 앞으로 배달된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발송처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압력 단체인 이란핵반대연합(UANI). 웬만한 글로벌 기업이라면 다 아는 이 단체가 급기야 현대차에게도 압력을 행사해온 것.

UANI는 이 편지에서 "이란과의 거래가 현대차의 이미지와 명성에 지속적인 손상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며 "현대차도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한) GE, 티센크루프 등의 대열에 합류하라"고 강권했다.

현대ㆍ기아차 수뇌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편지를 접한 뒤 긴급 회의에 들어갔으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몇 달 동안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다가, 최근에야 내부적으로 이란과의 거래를 조용히 접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미 의회와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UANI의 압력을 외면할 경우 더 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사실 보수 성향의 UANI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주유엔 대사를 지낸 마크 왈라스가 2008년 주도해 결정했다. 자문위원으로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고 리차드 홀부르크 전 주유엔대사, 헨리 소콜스키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장 등 거물급 인사를 영입, 초당파적 비영리 단체를 표방하며 이란 제재 관련 입법에 적극 간여해 오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에서 발효된'포괄적 이란제재법'의 입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법안은 이란의 석유개발에 직ㆍ간접으로 참여하는 기업의 제재를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UANI의 활동은 이 뿐이 아니다. 그 동안 이란과 거래를 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리스트를 작성, 압력을 행사해 왔는데, 특히 200여개 글로벌 기업들을 지목해 이란과의 상거래 중단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이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불매운동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에 이미 몇몇 글로벌 기업은 손을 들고 말았다.

올해 건설 장비그룹 캐터필러가 이란행 물자수주를 중단하겠다는 선언한 것을 비롯해, 유럽 최대 전기ㆍ전자 회사 지멘스, 보험회사 알리안츠, 엘리베이터 회사 티센크루프 등이 최근 이란에서 철수하거나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 단체의 압력 때문으로 알려졌다. UANI는 2009년 미국의 가전회사 GE로부터도 자발적으로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서명을 받아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이 단체가 테러와 핵개발을 시도하는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이라는 굴레를 씌울 경우 미국 시장에서 판매감소와 기업 이미지 손상을 당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 단체로부터의 압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결국 조용히 이란과의 거래를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로 미국과 유럽 기업을 상대로 성과를 거둔 UANI는 최근 대상 리스트를 아시아 쪽으로 확대하고 있다.

때문에 아시아의 대표기업인 현대차도 자연스럽게 이 단체의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UANI는 미 의회 거물 인사들에 대한 로비를 통해 기업에 대한 압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실제로 이 단체는 정 회 장에게 보낸 편지를 미 상원의 조셉 리버만 의원(국토안보위원장)등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만약 미국에서 보수 성향 단체 중심으로 불매 운동이라도 발생할 경우 여론 악화를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판매뿐 아니라 제 3공장 건설 등 때문에 연방정부, 주정부 및 시민단체들과 다양하게 협의를 해야 하는 현안이 많아 조용히 이란 시장에 대한 사업을 축소,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시장을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현대ㆍ기아차의 고민은 여전하다. 이란 시장은 연 2만여대 판매 수준으로 중동에서는 상당히 큰 시장이다. 더군다나 자칫 연간 40만대 규모로 성장한 중동시장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유사한 협박을 받은 국내 기업이 더 있을 수 있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다음 차례가 국내 어느 기업이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쉬쉬하고 있지만 이미 현대차 그룹과 같은 압력을 받은 기업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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