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미술가 전수천은 생화와 조화를 뒤섞어 배치한 뒤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꽃은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다. 작가 유승재는 더 구체적으로 생화와 조화를 섞어서 작품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화는 말라 떨어지고 조화만 남는다. 진짜 꽃 보다 가짜 꽃이 더 아름답다.
29세 젊은 작가 염승숙의 눈에는 "사람도 사회도 가짜"다. 그녀의 단편 소설을 엮은 신간 <노웨어맨> 에는 짝퉁 명품을 만들어 동대문에 파는 장공수와 1위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하면 재빨리 아류인 미투(me too) 상품을 만드는 이진성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노웨어맨>
이진성이 개발한 미투 상품 판매율이 원조 제품을 뛰어 넘자 원조 회사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다. 이진성의 회사는 소송에서 패한다. 그는 회사에서 해고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나 모두 실패한다. 자신의 진짜를 보여주려 했지만 그는 가짜였을 뿐이다. 결국 도움을 얻으러 온천 개발로 성공한 친구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 도시의 모든 온천은 가짜 온천수로 만들어졌으며 친구도 그것이 발각 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고 절망한다.
2007년 학력위조 사건 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정아씨가 이번에는 자서전 <4001>로 화제가 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신정아 편을 시청하다 보니, 그의 이야기에 <노웨어맨> 의 주인공 이진성의 삶이 오버랩 된다. 신씨는 학력 위조 등으로 이미 처벌받았지만 자신은 학력 위조도 거짓말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피해자라고 말한다. 신씨의 말을 듣고 있으면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지고 그가 이 사회의 피해자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방송에 출연한 한 전문가는 "과도하게 돌팔매질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이 <4001>로 돌아오지 않았나" 하는 반성론을 제기했다. 노웨어맨> 그것이>
<4001>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의 자기 고백적 주장들은 새로운 해석으로 연일 재생산되며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4001>에 대한 관심이 곧 상업적 중요성을 가진다는 면에서 신씨는 이미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신씨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프리즘이다. 5년 전 그녀가 실력 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와 허술한 미술계의 구조를 드러나게 하였다면 이번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려는 진지함보다 흥미와 오락을 원하는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 보인다. 신씨의 주장에 네티즌들의 주된 반응은 "흥미롭다"다.
개그맨 김영철이 눈 코 입을 크게 벌리고 "세월이 야속해"하면서 가수 하춘화를 희화화해 인기를 누렸다. 그러자 하춘화가 자신을 흉내 낸 김영철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오리지널이 가짜를 모방한다. 중요한 것은 진짜 가짜의 여부가 아니라 재미와 오락이다.
우리가 진지함을 외면하고 오락을 추구하는 동안 사회는 가짜로 채워져 간다. <노웨어맨> 의 이진성은 외친다. "치료 불가능하다. 세계는 가짜 그 자체다. 진실은 사장되고 진짜는 침윤되고 가짜만이 새로이 건설되는 반(叛)의 세계다." 노웨어맨>
플라톤은 인간을 동굴에 갇힌 수인(囚人)에 비유했다. 수인은 동굴 벽에 비치는 사물의 그림자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풀려나서 동굴 밖으로 나가 진짜 사물들을 보게 된다. 젊은 작가 염승숙은 우리 사회가 플라톤의 동굴 속처럼 가짜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4001>의 흥미와 오락에 빠지기보다는 <노웨어맨> 을 읽거나 벚꽃을 보러 동굴 밖을 산책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건강한 일처럼 보인다. 노웨어맨>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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