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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론조사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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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론조사의 허실

입력
2011.04.1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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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선택이나 중요한 판단을 할 때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행위는 유사 이래 늘 있어왔을 것이다. 소수의 주변사람이나 특수관계인들에게 묻는 이런 행위를 여론조사라고 할 수는 없다. 표본의 대표성부터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여론조사를 통해 정책을 결정한 이는? 세종대왕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 12년(1430년) 전국 농민 17만2,648명을 대상으로 무려 5개월에 걸쳐 여론조사가 실시된 사실이 뚜렷이 명기돼 있다. 공평한 세금부과 방법, 즉 적절한 공법(貢法)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과연 세종대왕다웠다.

■ 세종 때의 조사는 관리들이 가가호호 직접 방문해 정액세금제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고 그 이유까지 상세히 들어 기술하는 방식이었다. 지역별로 논밭의 토질과 규모, 평소 작황에 따른 백성의 입장 차이에서부터 관리의 직위에 따른 찬반의견의 차이까지 드러났다. 웬만한 현대의 여론조사 뺨치는 수준이다. 서양에선 이보다 무려 400년 뒤인 1824년 미국 지역신문이 실시한 대통령 후보자 지지율 조사가 첫 공식 여론조사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기자들이 아무나 붙들고 물어본 방식이어서 세종 때의 대규모 정밀조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언제나 표본의 대표성이다. 최악의 실패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1936년 미국 '리터러리 다이제스트(The Literary Digest)'지의 대선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였다. 공화당의 압승을 예측했으나 결과는 민주당 후보의 대승이었다. 당시 중산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와 전화 보유자명단에서 표본을 추출함으로써 보수 공화당 지지자들의 의견이 일방 반영된 조사결과를 내놓은 때문이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증폭되고 있는 여론조사 불신 분위기도 기존 전화조사가 갖는 표본 추출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 사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은 맹신에 대한 각성이다. 표본을 아무리 정교하게 추려도 이런 양적 측정방식은 조사자와 피조사자의 성격, 기분, 분위기, 말투, 사회인식, 질문형식 등 숱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특히 선거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자체가 도리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도 하는 역설을 낳는다. 다수의 의견을 좇는 '밴드왜건'효과니, 거꾸로 다수의견에 반발하는 '언더독'효과니 하는 게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여론조사는 그저 조사일 뿐이다. 참고용이지 과하게 의미를 부여할 건 아니라는 말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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